부동산재벌 박부자가 죽을병에 걸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당시 크고 작은 건물 서른일곱 채를 소유하고 있었던 그는, 병을 낫게만 해준다면 건물 한 채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신에게 빌었다. 그러나 낫지 않았다. 다음에는 두 채를 바치겠다고 빌었다. 그래도 낫지 않았다. 세 채로 늘렸다. 역시나 낫지 않았다. ……결국 건물 서른여섯 채를 기부하겠다고 맹세한 뒤에야 병이 나았다. 그것 참 화끈한 신이었다.
박부자는 약속대로 건물 서른여섯 채에 속한 모든 매장과 사무실, 주거공간을 여러 개인과 단체에 무상, 무기한으로 임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죽다 살아나서 삶의 의욕이 넘쳤던 그는, 투병 중에 작성한 버킷리스트 가운데 서른여섯 가지를 뽑아 건물들의 콘셉트를 정했다. ‘한 달 내내 백 편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소망은 7천 석 규모의 독립ㆍ고전영화 전용관이 되었다. ‘조용한 집 안에서 클래식을 듣고 싶다’는 소망은 층간소음 제로의 완벽 방음 아파트가 되었다.
박부자의 건물에 입주하기 위한 전대미문의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졌다. 그는 입주자 선정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 최대한 투명하게 지원서 심사를 진행했다. 수많은 부동산재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박부자는 국내 최고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집밖에 나서기만 하면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고, 강연 요청이 끊이지 않았으며, 박부자의 얼굴이 표지에 박힌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출간되었다.
건물 36채의 모든 공간을 배분하고 리모델링까지 마친 것은 무려 7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마침내 박부자는 마지막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다음 날이 되자 홀연히 사라졌다.
‘하나만 하는 상가’는 박부자가 기부한 건물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다. 그가 젊었을 때 살던 아파트단지 상가인데, 단지 자체가 오래된 만큼 상가도 낡고 공실이 반 이상이었다. 그러던 차에 위의 기부 사건을 계기로 리모델링을 거쳐 소규모 개인 매장을 들인 것이다. 수익성은 아예 포기한 소소한 업종들만 골라 받았기에, 매장이라기보다는 개인 작업실에 가까운 느낌도 든다.
‘하나만 하는 상가’에 입점한 가게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새우깡, 감자깡, 고구마깡, 양파깡 등을 직접 반죽해서 오븐에 구워 만드는 수제 깡과자 전문점.
모래시계를 개인이 원하는 시간과 모양대로 만들어주는 모래시계 공방.
앞머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라 주는 앞머리 미용실.
미로만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미로 갤러리.
세 시간 이상의 개인상담으로 딱 맞는 별명을 지어 주는 닉네임 작명소.
편지와 사진, 일기장 따위를 안전하게 불태워 주는 소규모 소각장.
매일 시 한 편을 지어 손글씨 엽서로 만드는 시인의 방.
오직 계란후라이만 만드는 계란후라이 전문점 등등.
그중에 오늘 소개할 곳은 계란후라이 전문점 ‘후라이버시’다.
후라이버시는 ‘하나만 하는 상가’에서도 가장 작고, 입점도 제일 늦었던 곳이다. 어찌나 좁은지 한번에 손님 한 명밖에 들어갈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파 하나와 테이블 하나뿐이다. 포장마차처럼 테이블과 조리대가 맞붙어 있는데, 요리하는 손은 보이지만 그 윗부분은 나무 칸막이로 가려져 있다. 식당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철통같이 지키는 셰프다. 카모메식당, 심야식당, 윤식당 등등의 인간적인 셰프들을 기대해선 안 된다.
이곳의 메뉴는 계란후라이뿐이다. 하다못해 스크램블드에그나 계란말이나 수란 같은 비스무리한 요리조차 취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라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들어낸다고 한다. 본 기자도 직접 들어가 주문을 해 보았다.
김 기자(이하 ‘김’): 계란후라이 하나 부탁한다.
후라이버시 셰프(이하 ‘후’): 어떤 후라이를 원하시냐.
김: 후라이가 후라이지 어떤 후라이는 뭐냐.
후: 처음이면 이 메뉴판을 참고해보시라.
20페이지 분량의 커다란 메뉴판에는 무려 216가지 버전의 계란후라이가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기름의 종류, 익히는 정도, 뿌리는 토핑 등등에 따라 계란후라이의 요리법은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어 본 기자의 취향에 가장 가까운 ‘특대란-마가린-양면익히기-70%반숙-맛소금1꼬집-케첩2바퀴’ 조합은 179번 메뉴였다.
주문을 하자 셰프의 손이 능숙하면서도 여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스텐팬에 마가린 한 조각을 툭 떨군다. 마가린이 녹고 팬이 달궈지자 계란을 톡 깬다. 촤아-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적당히 익자 날렵하게 뒤집는다. 물론 노른자를 터뜨리는 실수 따윈 없다. 주문대로 맛소금과 케첩을 뿌린다. 완벽하게 70% 정도 익었을 때 잽싸게 뒤집개를 밀어넣어 접시에 옮겨 담는다.
그 맛은 과연 어릴 적 할머니가 부쳐주던 그 맛 그대로였다.
김: 듣던 대로 대단하시다.
후: 감사하다. 익숙해지면 번호가 아니라 그냥 말로 주문해도 된다. ‘목감기 걸렸을 때 가장 좋은 후라이’라거나 ‘내가 상상도 못해본 색다른 후라이’라는 식으로 주문하는 분들도 있다.
김: 진정한 후라이 장인이다. 혹시 잠시 인터뷰 가능한가. 김 기자라고 한다.
후: 원칙 하나만 지켜주면 된다.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 것이 후라이버시의 원칙이다.
김: 어째서 하필이면 계란후라이 전문점을 차렸나.
후: 대략 20년 전,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 앞에 계란후라이 자판기가 있었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종이컵에 계란후라이가 담겨 나오는 기계였다.
김: 나도 어렸을 때 봤다.
후: 계란후라이는 가장 기초적인 조리음식이다. 요리조차 기계가 하게 되었다는 게 슬프게 느껴졌다. 계란후라이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추억이 담긴 힐링요리 아닌가. 그런 요리를 자판기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열심히 계란 부치는 연습을 했다.
김: 이 정도 실력인데 왜 이렇게 작은 가게를 차렸나.
후: 바쁜 건 질색이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춰 느긋하게 요리하는 게 좋다. 손님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계란후라이는 휴식이다.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얌전한 후라이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다. 노랗고 하얗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후라이를 호로록 한 입 하면 마음까지 따뜻해지지 않겠는가. 그런 휴식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리기 어렵다.
김: 칸막이 때문에 어떤 손님들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후: 그렇지도 않다. 물론 손님들 얼굴은 모르지만, 내가 묻지 않아도 먼저 자기 얘기를 꺼내는 손님들이 많다. 후라이 먹다 우는 분들도 꽤 있다. 건드리지 않아도 터지는 노른자가 있듯,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후: 여섯 살짜리 꼬마 단골이 있다. 처음에 꼬마가 들어왔을 때는 깜짝 놀랐다. 그때 유일하게 칸막이 너머로 나갔다. 소파가 너무 높아서 번쩍 들어 앉혀줘야 했다. 그 후로 소파 옆에 어린이용 발받침을 마련했다.
김: 그 꼬마는 셰프 얼굴을 본 건가.
후: 그렇다. 어쩔 수 없었다.
김: 그렇게까지 얼굴을 가리는 이유가 뭔가. 가릴수록 더 궁금해지는 법 아닌가.
후: 손님이 내가 아닌 계란을 봐주길 바라서다.
김: 얼굴 보면 알 만한 사람이라는 뜻인가.
후: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김: 재벌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좋나.
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김: 후라이버시는 하루 네 시간만 영업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나머지 시간에는 뭘 하나.
후: 영화도 보고 클래식도 듣는다.
김: 행복한가.
후: 대체로 그렇다.
김: 대체로라면 행복하지 않은 점도 있단 말인가.
후: 요즘은 AI 걱정뿐이다.
박부자가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 본 기자도 그의 집 앞에 진을 친 기자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많은 기사들을 썼다. 박부자의 기부에 대한 자식들의 반발에 대해, 심사에서 떨어진 이들과 합격한 이들의 갈등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거나 ‘입주자 선정 과정의 비리 의혹’이라거나 ‘사행성 문화 조장’이라는 등등의 수많은 구설수에 대해 썼다.
어느 날 본 기자는 모종의 루트를 통해 박부자의 단골 백반집을 알아냈다. 박부자는 그 허름한 식당에서 모자를 눌러 쓴 채 혼자 밥을 먹곤 했다. 왜 단골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 집 백반은 몹시도 평범했다. 플라스틱 접시에 덤으로 담아 주던,
계란후라이 하나를 제외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