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 Jul 11. 2017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일주일 휴가 편

1. 유토피아


소한가 씨는 이름과는 달리 무척 빡센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한 달에 휴가가 일주일밖에 안 되는 것이다. 다른 회사는 한 달에 2주씩 교대 근무가 기본인데 말이다. 그래도 휴가가 짧은 만큼 계획적으로 알차게 보낼 수 있다며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는 소한가 씨였다. 월정기휴가 외에도 매년 4주의 자율휴가가 따로 있으니 그럭저럭 재충전할 정도는 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소한가 씨의 계획적인 휴가를 위협하는 이가 있었다.


“소 대리, 할 거지?”


“아, 싫다니까. 황금 같은 휴가를 그딴 식으로 써야겠냐?”


옆자리 이 대리가 지난달부터 자기 영화에 출연해 달라며 생떼를 쓰고 있었다. 일주일 휴가 동안 단편영화를 찍어 스마트폰 영화제에 출품하겠다는 것이었다. 시나리오, 촬영장소, 의상, 소품, 다른 배우들까지 몽땅 세팅해놓고 원톱 주연 소한가 배우님만 기다리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휴가 때 할 일도 없는 애들이 꼭 이러더라. 그 시간에 뭐 할 건데? 맨날 치킨이나 뜯으면서 드라마 정주행 하는 거 모를 줄 알아?”


“드라마 정주행이 어때서? 그 드라마가 네 영화보다 작품성 있거든?”


“시나리오나 읽어보고 말씀하시지.”


“읽어봤어, 읽어봤다고! 내가 한류스타 역할을 어떻게 하냐!”


“그런 아이러니가 내 예술세계의 포인트란다.”


“뭐래냐.”


소한가 씨도 이 대리가 왜 이렇게까지 졸라대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소한가 씨는 사실 아역배우 출신이었다. 열한 살까지 가끔씩 소소한 단역으로 출연하다 아역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연예계를 떠난 케이스였는데, 그 과거를 어쩌다 술김에 실토해버려서는 이처럼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야, 너도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될 거 아냐. 100세까지 뭐 하고 살래? 두고 봐라, 난 10년 안에 꼭 장편 데뷔해서 회사 때려치울 거니까.”


“너 여기서 정년 채운다는 데 내 휴가 보너스를 건다.”


“……너무 크게 거는 거 아니냐?”


“아무튼 7월엔 안 돼.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 가기로 했단 말이야.”


“어! 그럼 8월엔 되는 거지? 된다고 한 거다! 무르기 없기! 퉤퉤퉤!”


“너 하는 거 봐서.”


아무래도 결국은 져주게 될 모양이다. 하긴 매달 오는 휴가, 한번쯤은 흑역사 만들기에 탕진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의외로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며, 또다시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는 소한가 씨였다.




2. 디스토피아


오바쁨 씨는 입사 7주년 기념으로 일주일 휴가를 얻었다. 감격적인 생애 첫 휴가였다.


왜 하필 7년마다 휴가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1. 럭키 세븐이니까


2. 상위 1%만이 7년 동안 버틸 수 있으므로


3. 초대회장이 회사 차리고 7년 만에야 처음으로 휴가를 갔다는 창립신화를 기념하려고


……그러나 사실은 ‘5년은 너무 빠르고 10년은 너무한 것 같다’며 임원진들이 장시간 격론 끝에 절충한 결과일 뿐이다. ‘축의금, 5만원이냐 10만원이냐’로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작년부터 오바쁨 씨를 비롯한 동기 네 명은 소위 ‘휴가 파이’를 늘리기 위해 똥 싸고 손 씻을 시간조차 아껴가며 일했다. 실적 총량에 따라 휴가 총량이 정해지고, 휴가 총량을 또 개인 실적에 따라 배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오바쁨 씨와 동기들은 기적적으로 휴가 최대치인 25일을 따내고야 말았다.


25일 휴가는 실적 순위에 따라 10일, 7일, 5일, 3일씩 나눠 쓰게 된다. 이것도 많이 평등해진 것이다. 옛날에는 한 사람이 22일을 쉬고 나머지는 하루씩 쉰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세 명이 하루 휴가를 어떻게 활용했느냐 하면, 한 명은 사직서를 쓰고, 한 명은 미뤄 둔 치질 수술을 받고, 한 명은 아버지 산소에서 깡소주를 깠다고 한다. 물론 그 세 명은 현재 아무도 회사에 남아 있지 않다.


오바쁨 씨는 상위 1%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실적이 높은 7년 연속 우수사원이었으므로 열흘 휴가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박 팀장이 오바쁨 씨를 따로 불러 전해준 이야기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사장 조카인 황 대리가 열흘짜리 해외연수를 이미 신청했다는 것이었다.


“그까짓 사흘 더 쉬는 게 중요해? 바쁨 씨, 인생 오늘만 사나? 길게 보라고. 다음 휴가 때까지 다녀야 될 거 아냐. 우리 회사에서 휴가 두 번 받는 사람 드문 거 알지? 바쁨 씨가 너무 잘해주니까, 내가 오래 같이 일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야.”


……그렇게 해서 정해진 일주일 휴가였다.


오바쁨 씨는 열다섯 생일을 기다리는 인어공주의 심정으로 오직 휴가 전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휴가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오바쁨 씨는 자신의 휴가 날짜를 SNS에 공개하는 일생일대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오올~ 이번엔 진짜 집들이 하는 거지?”


“에미야, 나 보러는 못 와도 시숙부 문병은 꼭 가야 한다.”


“잘됐다! 나 그날 결혼하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 어쩜 이렇게 날짜가 딱 맞냐.”


결국 오바쁨 씨는 엑셀까지 동원해 분 단위 스케줄표를 짤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할 일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왠지 전처럼 설레지만은 않았다.



3.


당신의 휴가는 어떠한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계란후라이 전문점, 후라이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