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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Jan 31. 2020

독감주사 맞기

하원 길에 독감 주사를 맞으러 가정의학과에 갔다. 나도 맞고 유은이도 맞고. 역시 주사는 무서우니 함께 맞으러 가기로 했다. 물론, 유은이의 동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엄마 병원에 가서 주사 맞아야 되는데, 같이 갈까?” 유은이게 물으니, 좋다고 함께 따라나섰다. 조금 측은한 표정도 지어주었다.

“유은이도 같이 주사 맞을까?”

역시,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유은이는 걷다 말고 가만히 멈춰서 있다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부정했다. “나는 주사 맞기 싫은데.” “나는 주사 안 맞고 싶은데.” 같은 말을 한 스무 번쯤 반복했나. 거북이걸음으로 천 걸음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정의학과라서 그런지, 소아과에서는 보기 힘든 어머님, 아버님들이 많이 보였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보다는 주사 생각을 잊게 하기 위해, 그림책을 읽기로 했다. 직접 책을 고르게끔 했더니 웬걸, 고른 책 세 권 중 하나가 예방접종 관련한 책이었다. 어쨌든 골라온 책이니 읽어주었다. 책은 예방주사의 이로움과 주사를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등의 내용이었지만, 하필 지금 읽어야 하는 걸까. 주인공 아이는 주사를 맞기 싫어하다가 결국 맞았고, 역시 주사는 아프다며 찡그린 얼굴로 끝났다. 너무 사실적인 것 아닌가? 맙소사, 유은이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     


그나저나 간호사분이 아이는 무료접종 기간이 아니어서, 무료로 맞히려면 15일 이후에 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결국 주사는 나만 맞게 생겼다. 유은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지만, 당사자는 전혀 믿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와 간호사 언니가 자신을 함께 속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유은이는 오늘 주사를 맞지 않을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잠시 후, 내 이름이 불렸다. 유은이를 대기실에 혼자 두고 갈 수 없으니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펄쩍 뛰며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역시 엄마를 믿지 않았었나 보다.     

간호사분이 아이를 봐주시겠다고 해서 별수 없이 혼자 들어갔다. 유은이 혼자 잘 있을 수 있을까. 잠깐이지만 불안했다. 간단한 건강상담과 함께 주사를 맞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유은이는 아주 개운한 얼굴이다.     


“엄마, 주사 잘 맞았어?”

집 밖에서 가족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은 처음이었다. 오늘의 병원 방문은 사소하지만, 의미가 있는 일이 되었다. 엄마 없이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수 있게 될 정도로 많이 자랐다는 의미(물론, 주사의 존재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나느응 내일 주사 맞으께에~” 라고 약속하는 유은이었다. 내일 역시 무료 접종은 할 수 없으니 맞을 일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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