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현 Jan 31. 2020

그녀들 각자의 간식 시간


딸랑. “어서 오세요~”

유리문을 밀고 여자 셋이 들어온다. 할머니 한 명과 아이 엄마 한 명, 여자아이 한 명.


매뉴팩트 커피 로스터스라는 어려운 이름의 이 카페는 연희동에서는 커피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다. 가게 입구부터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 유명세를 짐작게 한다. 문을 열자마자 짙은 커피 향이 먼저 반겨준다. 조그만 가게에 바리스타만 네다섯 명. 가게 구석구석 사람들이 촘촘하게 앉아있다. 아이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주춤거린다. 입구의 줄을 보고 가게를 둘러보며. 그렇게 세 여자가 돌아서려는 때.

“저희, 커피 기다리는 거예요. 들어가셔도 돼요.” 줄을 서 있던 검정 코트의 한 여성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테이크아웃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다행히도 중앙에 있는 넓은 테이블 모서리에 자리가 빈 것을 보았고, 세 여자는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 뭐 마실래?” 아이 엄마는 카페 메뉴판을 죽 훑어주지만, 그녀의 엄마는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커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커피. 연한 걸로.”

잠시 후, 할머니에게는 샌프란시스코 핸드드립이, 아이 엄마는 플랫화이트가, 여자아이에게는 초코아이스크림이 앞에 놓였다. 그녀들은 각자의 간식 시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아유, 커피 마시니까 눈빛이 돌아온 것 같다.”

조용하던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어, 진짜. 엄마 눈이 좀 커진 것 같아.”

“너도 아까보다 눈이 커졌어. 유은이도 그렇고.”     


아이 엄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본다. 정말이었다. 연희동 거리를 다닐 때의 떼쓰던 모습과 달리, 온순한 얼굴이다. 문득 아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닌 게 미안해졌다. 괜히 주말에 플리마켓에 가자고 해서, 어린아이랑 친정엄마만 고생시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 엄마는 손에서 물티슈를 놓지 못한다. 아이 입가에 옷소매에 가슴팍에 흘러대는 초코아이스크림을 닦아주느라. 그녀는 카페 의자에 앉아서도 허리 한번 펼 새가 없다.     

“커피 식겠다. 식기 전에 마셔라. ...... 네가 여기에 앉을래? 내가 유은이 옆에 앉을게.”

할머니는 아까부터 아이 엄마가 안쓰럽다. 온종일 아이를 안고 다니는 통에 허리도 아플 텐데, 카페에 와서도 아이만 신경 쓰니. 커피 한잔을 마음 놓고 못 마시는 딸 아이. 애 키우느라 바쁜 딸을 보며, 결혼시키기 전 연희동에 둘이 놀러 오던 시절을 추억한다.   

   

잠깐의 여유. 그러나 곧 세 여자의 간식 시간은 끝이 나버린다. 당 충전으로 텐션이 올라간 여자아이의 폭탄 발언과 함께.     

“엄마, 이 언니들은~ 센 언니들이야?”

아이 엄마는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다급하게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댄다. “쉿~! 조용히 얘기해야지.”

같은 테이블에 합석한 젊은 여성들을 보고 한 말일 거라 유추하며, 또르르르. 아이 엄마는 눈동자를 굴려 그녀들을 살펴본다. 볼드한 액세서리에 짙은 화장, 올 블랙. 강렬한 인상이었다. ‘아니, 센 언니라는 단어는 어디서 배운 거지?’ 아이 엄마는 아이의 어휘에 대한 고민을 잠깐 한다.

사람을 앞에 두고 대놓고 얘기하는 아이 때문에 민망한 날들이 많던 아이 엄마는 ‘오늘도 역대급 하나 갱신했구나.’ 하고 생각한다.      


“엄마, 창문의 언니들은 뭐야? 누구야??”(큰 소리로)

데시벨 조절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또다시 큰 소리로 묻는다. 유행하는 옷차림의 여자들을 처음 본 아이로서는 순수한 궁금증이지만, 이곳은 좁디좁은 카페. 게다가 매뉴팩트 커피 로스터스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 엄마를 향해, 할머니는 그만 밖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두 여자는 서둘러 잔에 남은 커피를 비우고, 자리를 정리한다. 다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 컵을 손에 든 여자아이는 더 먹고 싶다고 불평하지만, 아이 엄마는 아이를 들쳐 안고 문을 나섰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덩그러니, 미처 챙기지 못한 휴대폰 하나가 놓여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던 할머니는 휴대폰을 챙겨 든다. 아이 엄마의 부산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가의 이전글 독감주사 맞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