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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Apr 26. 2024

20대가 뭐길래

벚꽃이 초속 5센티미터의 속도로 흩날리는 토요일이었다. 꽃이 만개한 주말, 서울숲에는 벚꽃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날아왔을지 모를 그들은 모두 짝꿍과 함께였다. 바람 한 점에 뒤집힐 듯한 치마 길이의 여자들과 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남자들. 연인들은 벚꽃처럼 보드랍고 예뻤다.   

  

“와~ 진짜 좋을 때다! 저기 봐! 데이트하는 사람들! 부럽다아.”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나 역시 짝꿍과 서울숲에 왔지만(플러스 두 아이도 함께),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부러움은 참을 수 없었다.

“윤아~ 넌 좋겠다~ 앞으로 데이트할 날들이 많으니~” 괜히 딸에게 부러움을 토스했다.

“엄마! 엄마도 데이트하면 되잖아.”

“윤아~ 엄만 늙었어~ 이십 대의 감성과는 다르단다~” 

스무 살 남짓의 긴 머리와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여성을 보며, 비교하듯 말했다. 머리야 기를 순 있겠지만 불편함에 곧 묶어버리겠지. 바람이 불 때마다 휘날리는 얇디얇은 원피스를 추워서 어떻게 입어. 이런 생각을 하며, 몇 년째 옷장 속에 처박혀 있는 짧은 원피스를 미련 없이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는 그럼,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

“음~ 엄마? 역시 이십 대가 좋았지~ 힘들긴 했어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어서 좋았어.”     


20대, 지나와서 다행인 나이. 좋았다고는 하나,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나이. 대학 시절엔 늘 시간이 없었다. 전공 공부로 시간이 없거나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것도 아니면, 해외로 배낭여행 가 있거나. 시간이 있을 땐 연애 중이거나 실연 중이었다.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탔던 시절. 20대는 스케치북 가득 크레파스로 꽉꽉 채운 그림 같다. 여백 없는 그 시절에 대한 미련도 후회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밀도 높게 살 수 있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다. 걱정 많은 소심쟁이가.

다만, 그 시절의 경험이 그대로 사라지진 않아서 여러모로 유산을 남겼다. 해보고 싶은 일은 시도해 보는 용기와 될 때까지 해보는 끈기. 그리고 아이에게 해줄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 만약 윤이가 20대 시절에 관해 묻는다면,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해줄까. 22살에 다녀온 인도 여행을 이야기 해줄까, 아니면 뉴욕 살던 남자와의 장거리 연애 이야기를 해줄까. 아직 연애 이야기는 이르겠지. 혼자 키득대며 회상 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옆에서 묵직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휘유우우, 이십 대? 난 이십 대가 없었어......”

땅으로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에 놀라 옆을 보니, 그늘진 얼굴로 한숨만 폭폭 쉬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남편은 10대와 20대 시절을 떠올릴 때면 후회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남들 다 공부하는 10대에 열심히 친구들과 놀았고,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공부를 시작해, 편입 공부와 신림동 고시 생활을 하며 20대를 보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서일까. 당연한 사실을 모를 때가 많다. 한 시절에 유명한 연예인 이름을 모른다든지. 영화 제목을 모른다든지.     


연애할 때만 해도 남편의 이런 면모는 놀릴 거리이기 전에, 놀라울 거리였다. 아직 한창 탐색하던 시절, 오늘처럼 벚꽃이 날리는 헤이리 마을을 산책하던 날이었다. 자갈이 많은 산책로에 뾰족한 구두 굽이 낄까 조심하며 걸었다. 남편 역시, 조심조심 좋아하는 영화 취향을 물어왔다.

“전 브레이브 하트랑 대부가 인생 영화예요.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전 이터널 선샤인이랑 비포 선라이즈요. 후속편 비포 선셋도 좋아하고요.”

“네? 뭐, 뭐라고요? 전혀 모르겠어요.”

“이터널 선샤인 안 보셨어요?”

“네, 전혀. 다 처음 들어봐요.”

“정말요?”

이 말을 끝으로, 구두 굽이 자갈돌 사이에 끼어버려 대화는 끝이 났다. 너무 큰소리로 놀란 표시를 한 것도 민망한데, 구두 굽까지 끼어버려 얼굴이 달아올랐다. 적어도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내겐 신선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며칠 전, 저녁에 함께 TV를 보는데, 커피 광고에 이나영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 TV에 예쁜 연예인이 나와도, 내가 더 낫다고 해주는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지 떠보려고 물었다.

“와, 이나영 진짜 이쁘다~ 결혼한 여자 같지가 않네~”

“뭐? 이나영 결혼했어?”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온 국민이 다 알만한 당연한 것을 또 모르는 남편에게 놀라움과, ‘또 구나’ 싶은 익숙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엥? 몰랐어? 원빈이랑 결혼했잖아.”

“뭐, 연예인이 결혼하든지 말든지, 관심 없어.”

“우와~ 이나영, 원빈 결혼한 걸 어떻게 몰라? 한국 사람 맞아?”

괜히 놀라움을 가장하며, 놀리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후후, 어떻게 놀려줄까. 정색한 얼굴의 남편은 한 마디로 반격의 일침을 가했다.

“후유, 난 이십 대가 없었어.”     


또다시 시작되는 레퍼토리. 서울숲이라는 장소만 다를 뿐, 남편과 나의 대화는 예전과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익숙한 그 한숨에 반발하듯 말했다.

“이십 대 때 못 놀았던 거 이제 하면 되지. 그래도 당신은 열심히 공부해서 어쨌든 목표를 이뤘잖아. 신림동에서 그렇게 못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제 일만 많이 하지 말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고 그러면 되지.”     


어차피 내 말은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니까. 이제 남편은 일이 많아 그럴 시간이 없으며, 그렇게 일을 해야만 하는 당위를 설명할 것이다. 싫다 싫다 하면서도 해가 갈수록 일을 점점 더 많이 하는 남편이 어떤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 의아하다. 가정을 위한 책임감으로서의 정도를 넘어선 것 같을 때, 성취를 위한 욕망과 더 닿아있는 것 같을 때다. 


일에 치여 제주행이라는 로망에 기대어 살던 남편은 돌연 강남을 꿈꾸며 살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던 꿈에서 자본주의의 정수로 들어가고 싶어 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남편이 10대 시절에 놀았다지만,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는 영재반이었다고 한다. 공부에 흥미를 못 느껴 영재반을 나온 이후로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다. 당시 영재반에 함께 있던 동문 중엔 의대로 진학한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남편은 20대 시절에 대한 후회보다는 10대 시절에 대한 후회를 동력 삼아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 시절에 공부를 계속했다면, 그들처럼 의대에 진학했다면, 이런 후회가 앞으로만 나아가게 하는 건 아닐지.     


나이 얘기만 나오면, 한숨 쉬는 남편이 불편했다. 열심히 돈 벌겠다는데, 등 떠밀면 되는 일을 웬 고민이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잘 버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딴 데 한눈파는 것도 아니고, 성실히 일만 열심히 하니 오히려 칭찬할 만한 일이다. 다만 걱정된다. 남편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다. 고속으로 장거리를 주행하는 느낌. 혹시라도 어디 부딪쳐 사고가 나거나 엔진에서 연기가 나거나 최소한 기름이 떨어져야만 멈출 수 있는 자동차다. 이렇게 한숨을 쉴 때면, 지금 엔진에 연기 나는 상황은 아닌 건지 살피게 된다. 공부만 하며 20대를 보낸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일만 하다 40대를 보내버리고 후회하게 되면 어쩌지. 그의 20대는 나와 관계없이 지나갔지만, 그의 40대는 관계하며 지나가기에, 한숨 쉬는 그에게서 어떤 부채감을 느낀다.     


부부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생관계다. 게다가 우리처럼 2명의 자녀가 있는 경우엔, 공생관계를 넘어서 4인의 팀처럼 움직이게 된다. 누군가 공부하고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누군가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누군가 따뜻한 밥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기 위해서 누군가는 가사 노동을 해야 한다. 팀원으로서의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하며, 4인의 팀을 잘 운영하려 노력한다. 이따금 역할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개인의 소망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아이 둘 낳고 육아에 매몰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내가 그랬고, 일에 매몰된 남편이 40대를 후회하게 될까, 걱정하는 지금이 그렇다.     


20대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후회가 없는 나는 20대에 할 수 있는 것을 못 해서 후회하는 남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차피 지나간 일은 제쳐두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라고 하면 될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건 뭘까? 현실에 충실한 삶일까, 기대치에 걸맞은 삶일까?     


남편이 갖는 후회는 내가 생각해 온 후회와는 조금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정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지 못함에서 오는 후회보다는 선택에 대한 후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인 것 같다. 한창 공부할 시기인 10대 시절에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탐색한 것에서 오는 후회와 그로 인해, 20대 시절에 남들 다하는 것을 가보지 못한 길로 남겨둔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닐까. 어쩌면 다수가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다수가 선택할 만한 조금 더 무난한, 조금 더 평범한, 그러니까 대중적인 길을 가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 말이다. 그렇다면, 남편의 한숨을 잠재울 방법은 한 가지 있다.     


20대 시절에 남들이 다 아는 연예인 이름 모를 때 놀리지 않기. 남들이 다 아는 영화 제목 모를 때 놀라지 않기. 남들이 다 가본 여행지 모를 때 수긍해 주기.

그리고 40대를 밀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기. 무모했던 20대의 세포들을 슬슬 깨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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