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채 떠난 여름

캄보디아 음악선교 후기

by 시에스타

색소폰으로 해외 선교를 가자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교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전할 만큼 나는 신앙이 깊은 사람도 아니었고, 색소폰을 잡은 지 오래되지도 않았다. 악보를 보고 틀리지 않게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매번 숨이 찼다. ‘과연 내가 가도 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일단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팀은 대부분 직장 일을 병행하는 남자들로 구성된 브라스밴드였고,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명을 제외하고 모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묘한 압박감과 함께 또 다른 마음을 느꼈다. 피할 수 있는 선택지 같지 않았다. 결국 어떻게든 시간을 내겠다고 참여 의사를 밝혔다. 아내도 플루트 팀의 일원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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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는 캄보디아였다. 부산에서 직항 노선이 없어 중국 상하이를 경유해야 했고, 경유 시간만 해도 여섯 시간이 넘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한여름 8월, 캄보디아의 공기는 무겁고 뜨거웠다. 밖에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악기를 들고 이동하는 일조차 버거운 날씨였다. 이번 선교는 우리 교회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음악을 통한 선교 활동’이었다. 참여 인원은 모두 31명. 색소폰을 중심으로 첼로, 바이올린, 트럼펫, 플루트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음악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아마추어 연주자가 대부분이었고, 몇몇 전공자들이 그 틈에 섞여 있었다. 출국 전 우리는 레퍼토리를 정하고, 팀 연주와 독주 무대를 나누며 나름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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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사흘 동안 우리는 여러 장소를 돌며 연주했다. 격식 있는 공연장은 없었다. 허름한 교회, 그늘 없는 야외 공원, 버스킹처럼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끝나는 연주의 연속이었다.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흐릿했다. 곡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듣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합주팀의 일원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는 사실이다. 완성도를 말하기엔 부족한 연주였고, 실수도 있었고, 음정도 흔들렸다.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박수를 쳐주었다. 순박한 웃음과 맑은 눈동자. 그 장면은 귀국한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다. 무언가를 잘해서 받은 박수라기보다, 그저 함께 있어줘서 건네진 박수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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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에게 해외여행에서 술을 빼 놓을 수 없었다. 하루의 끝은 늘 술과 함께였다. 낯선 도시에서의 피로를 술로 씻어내는 것이 익숙한 패턴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단 한 잔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색소폰과 함께, 선교라는 목적을 품고 보낸 하루하루는 술 없이도 충분히 차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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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이번 선교에서 내가 한 일은 대단한 연주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만한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저 잘하지 못한 상태로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서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이전과 다른 의미로 남았다. 우리는 종종 준비가 충분해야만, 자격이 갖춰져야만, 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여름의 캄보디아는 내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잘하지 않아도,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있지 않느냐.”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은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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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완벽한 연주자가 아니고, 선교를 논할 만큼 신앙이 깊은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소폰을 들고 그 자리에 섰던 그 시간은 내 삶에 분명한 의미로 남아 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망설이면서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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