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 1년차 색소폰으로 듀엣 무대 서기
입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집사님, 올해 아내랑 듀엣 무대에 서도 될까요?” K 집사는 우리 교회 관악부에서 음악 PD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 합창단 지휘까지 책임지고 있다. 나이는 젊지만 말과 행동이 사려 깊고, 늘 웃음을 잃지 않아 신도들 사이에서도 신뢰가 두텁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내가 꺼낸 말은 부탁이라기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선언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찬송가에 큰 관심이 없었다. 교회에 다닌 시간에 비해, 찬송을 적극적으로 듣거나 의미를 곱씹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플루트로 찬양 무대에 서는 아내 덕분에, 귀에 익은 곡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은혜’, ‘행복’ 같은 곡들은 워낙 유명했고, 멜로디도 좋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연주 영상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곳에 그렇게 많은 색소폰 찬송 연주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중 유독 귀에 잘 들어오고, 가사가 마음에 오래 남는 곡 하나가 있었다. 들을수록 마음 한쪽이 뜨거워지는 곡이었다. 2024년 관악부 연말 송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봉고차 안에서, K 집사와 나는 결국 일을 저질렀다. 일정과 곡을 그 자리에서 정해버린 것이다. 2025년 10월,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로 듀엣 무대에 서 보기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낼 때는, 마치 사고라도 친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아내는 듀엣 무대 자체는 좋다면서도 곡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2년쯤 전, 플루트 담당 집사님과 아내가 2중주로 무대에 섰다가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상의도 없이 그 곡을 정했느냐며 투덜거렸다. 나는 설득했다. “이번엔 내가 그 징크스 깰 수 있게 더 노력할게. 부족한 만큼 더 준비할 테니까, 같이 한 번 해보자. 나는 이 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꼭 무대에서 불어보고 싶어.”
우리 교회에서 1부 특송에 개인이나 듀엣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건,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되었을 때만 허락되는 일이라고 들었다. 나보다 먼저 악기를 시작한 분들도 많았지만, 단체 연주가 아닌 독주나 듀엣으로 무대에 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아내가 무대 경험이 많다는 점, 그리고 둘이서 충분히 준비한다면 ‘어찌어찌 들어줄 수는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특송 일정은 정해졌고, 초보자인 나는 마음만 바빠졌다. K 집사는 먼저 MR을 정해 보내주며, 그 음악에 맞는 악보를 찾아 연습해 보라고 했다. 플루트와 알토 색소폰으로 구성된 맞춤 악보를 만들어 줄 테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맞춰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악보가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정해진 MR에 맞춰 연습을 시작했다. 혼자 연습실에 들어가 색소폰을 불다 보면, 가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손끝으로 전해질 때가 있었다. 듀엣 무대를 상상하기도 했고, 무대에서 실수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채로, 나는 도착하지 않은 악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 시간은 연습의 시간이 아니라, 무대에 서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조용한 시험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