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엣 무대 회상4

5초의 침묵

by 시에스타

듀엣은 혼자 하는 연주와 다르다고 했다. K 집사는 연습 때부터 강조했다.

“상대방 눈을 한 번씩 보세요. 그게 진짜 듀엣입니다.”

처음으로 2명만 서는 무대였다. 나는 악보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눈을 떼는 것이 두려웠다. 잠시라도 시선을 잃으면 길을 잃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연습은 충분히 했다고 믿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를 보지 않고도 연주해낸 적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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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마지막 20마디쯤에서 생겼다. 내가 먼저 치고 나가면 아내가 받아서 번갈아 음을 이어가는 부분. 수십 번은 반복했던 그 구간.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은 악보에서 잠시 멀어졌고, 다음 마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MR만 흘렀다. 5초였다. 입은 색소폰에 닿아 있었지만, 머릿속은 전쟁터였다.

‘여기였나?’

‘아니, 그다음인가?’

나에게 그 시간은 5분처럼 느껴졌다. 관객은 조용했고, 나는 길을 잃은 채 서 있었다. 다행히 반주 속에서 내 자리를 다시 찾아냈다. 음을 이어갔고, 아내는 약속한 대로 받아냈다.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끝까지 연주를 마쳤다.


무대를 내려오자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 5초가 자꾸 떠올랐다. ‘왜 거기서 생각이 안 났을까.’‘조금만 더 집중했더라면.’ 자책은 빠르게 나를 겨냥했다.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그 공백의 순간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 사람들이 다가왔다.

“처음 무대라 긴장할 줄 알았는데 잘하셨어요.”

“부부가 함께 서는 모습이 참 은혜로웠어요.”

“돌아가며 연주하는 부분, 너무 좋았어요.”

실수인지 몰랐다는 사람도 많았다.

“프로는 틀려도 안 틀린 것처럼 넘어가는 게 실력”이라고 웃으며 말해주는 분도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에게는 5초의 실패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흐름의 일부였고, 어떤 이에게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종종 완벽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한 번의 실수로 전체를 깎아내리고, 잠깐의 공백을 ‘부족함’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완벽함보다 진심을 기억하는 건 아닐까. 나는 실수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무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소리를 다시 찾아냈고, 아내는 기다려주었고,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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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 5초는 혼자였다면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듀엣이었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연습하며 감정이 상했던 날들도 있었다. 악보를 두고 다투기도 했고, 말이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무대 위에서 서로를 믿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듀엣은 완벽한 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 서로를 기다릴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걸 그날 조금은 알게 되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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