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 5개가 붙은 악보

by 시에스타

올해도 교회 음악 무대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에는 문화회관을 대관해 꽤 근사한 행사를 열었지만, 올해는 교회 안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무대의 규모는 작아질지 몰라도, 준비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K 집사가 올해 음악 행사에 오케스트라에 참여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관악부에서 연주하던 곡보다 한 단계 높은 난이도의 악보이고, 현악기와 함께하는 편성이라고 했다. 색소폰으로 참여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실력이 충분해서라기보다, 그저 열정이 있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선뜻하겠다고 했다. 잘해서라기보다,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악보를 읽어내는 재미에 조금씩 맛을 들이고 있던 참이었다.


악보는 1월에 받아두었다. 그러나 받아둔 것과 마주한 것은 달랐다. 지난 주일, 연습하고 있냐는 물음에 거의 손대지 못했다고 답했다. 어렵고 낯설어서 자꾸 미루게 된다고. 다음 주일에 단체 연습이 있으니 그전에 한 번 맞춰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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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단체 연습 후, 악보를 펼쳤다. 샵이 다섯 개 붙어 있었다. 조표를 보는 순간, 마음이 먼저 위축됐다. 리듬은 익숙하지 않았고, 박자는 자꾸 밀렸다. 어려운 부분에서는 계속 반복했다. 분명 소리는 내고 있는데, 음악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레슨실에서 겨우 따라 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다시 악보를 보니 또 헷갈렸다. 조금 전까지 불던 구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괜히 한다고 했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동안 나는 내가 음악에 감각이 있다고 여겼다. 몇 번의 무대를 경험했고,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해냈다. 그런데 이번 악보 앞에서는 그 믿음이 힘을 잃었다. 감각은 출발을 도와줄 뿐, 끝까지 데려다주지는 않았다.


어떤 일이든 비슷한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설렘이 앞선다. 조금 익숙해지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경사가 나타난다. 그 경사는 눈에 띄게 가파르지 않다. 다만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이전 방식으로는 잘 오르지 않는다. 그 지점에서 많은 선택이 갈린다. ‘여기까지면 됐다’고 돌아설 것인지, 아니면 서툰 걸음을 계속 옮길 것인지.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는 건, 박수가 많아지는 일이 아니라 이런 순간을 통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벗겨지고,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리. 그 자리가 생각보다 쓸쓸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쓸쓸함 속에서만 보이는 것이 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왜 이걸 계속하고 싶은지.


악보는 여전히 어렵다. 샵 다섯 개는 그대로이고, 리듬은 나를 시험한다. 그래도 나는 악보를 다시 펼친다.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아마 성장이라는 것은 능숙해지는 순간보다, 능숙하지 않음을 견디는 시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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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 삶에도 그런 악보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처음엔 쉬워 보였지만, 막상 펼쳐보니 조표가 가득 붙어 있는 일. 괜히 시작했나 싶다가도, 이상하게 포기하기는 싫은 일. 우리는 결국 실력으로만 한 단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버티는 마음으로 넘어가는 건 아닐까.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샵 다섯 개’는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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