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색소폰 연습 하며 드는 생각

by 시에스타

대체 휴일이었지만 평소처럼 일찍 잠에서 깼습니다. 5시 반. 더 자도 될 시간이지만, 몸은 이미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쉰이라는 숫자가 주는 감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침대에 누워 뒹굴기보다는 샤워기로 향하게 됩니다. 물을 맞고 나면 하루가 조금 더 또렷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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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은 오전 근무입니다. 근무약사와 직원이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아침 7시, 색소폰 연습실에 도착했습니다. 지난주 레슨에서 받은 과제를 떠올리며 천천히 숨을 불어 넣었습니다. 관악기는 처음 불 때 차갑습니다. 금속으로 된 몸체는 밤새 식어 있고, 그래서 음정이 평소보다 낮게 나옵니다. 몇 번이고 숨을 넣어 악기가 데워져야 제 소리가 나옵니다. 사람의 체온이 악기를 바꾸는 셈입니다. 튜닝 앱을 켜 두고 음정이 정확한지 확인하며 같은 음을 반복합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숨을 고릅니다.


요즘은 반음계 스케일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흰건반에 해당하는 온음계는 비교적 익숙합니다. 하지만 반음계는 그 사이에 숨어 있는 검은 건반 음까지 모두 지나가야 합니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빠짐없이 짚어 올라가야 하니 손가락이 더 분주해지고, 실수도 늘어납니다. 단순해 보이던 악보가 갑자기 복잡해집니다.


시간이 넉넉해서 두 시간가량 연습했습니다. 중간중간 지루함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일은 늘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주 틀리던 부분이 매끄럽게 이어졌습니다. 굳어 있던 손가락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습니다. 그럴 때면 연습은 지루함이 아니라 기록이 됩니다. 눈에 띄지 않던 진전이 쌓여 있다는 기록.


휴일 아침, 색소폰에 숨을 불어 넣으면 소리와 함께 마음도 정리됩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조급했던 마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남아 있던 서운함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길게 내쉰 숨이 다시 돌아오는 동안 감정도 같이 정돈됩니다. 소리를 곧게 세우려면 숨이 안정되어야 하듯, 마음도 고르게 유지되어야 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온음계만 알고 있으면 세상이 단순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흰건반만 눌러도 하나의 곡은 완성됩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 있는 반음까지 짚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보이지 않던 음들이 드러나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선율이 새롭게 들립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됩니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처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여백이 있고, 말과 말 사이에도 작은 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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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라는 나이는 어떤 면에서는 조급함을, 또 다른 면에서는 차분함을 함께 줍니다. 더 빨리 가야 할 것 같다가도, 이제는 조금 천천히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음계를 연습하듯,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차가운 악기가 제 음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데워져야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진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악기를 가방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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