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서 만난 과거

by 시에스타

어스름이 깔린 저녁 8시 반, 하루의 고단함을 약국 문 뒤로 남겨둔 채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같은 강의실에서 약학을 공부했던 동기들, 이제는 각자의 지역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국장'들이 대부분입니다. 어제는 그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주로 약국을 하지만 멀리 밀양과 진주에서도 옵니다. 세월은 흘렀어도 마주 앉은 얼굴들엔 여전히 20대의 치기 어린 웃음이 서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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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의 고소한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할 무렵, 낯선 시선 하나가 느껴졌습니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사장님이 유독 저를 빤히 바라보고 계시더군요. 처음 방문한 가게에서 마주한 집요한 시선에 의아함이 고개를 들 때쯤,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건네왔습니다. “혹시 X동에서 약국 하셨던 약사님 아니세요?”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사장님은 제 기억의 서랍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단어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습니다. 그녀는 예전 제 약국에 한 달에 한 번 꼭 들르던 단골손님이었고, 무엇보다 저와 같은 코트에서 땀 흘리던 배드민턴 동호인이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부산시 남자 복식 대회 D조에서 우승했던 일과 그날의 뒤풀이 장소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기억력이 비상한 사장님 덕분에, 어느덧 제 머릿속에도 잊고 지냈던 셔틀콕의 궤적이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약국 문을 닫자마자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닌 배드민턴 경기장이었습니다. 셔틀콕이 라켓에 꽂히는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하루의 스트레스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코트를 누비고 나면 체중은 줄어들었고, 대회 준비라는 확실한 동기부여는 삶의 큰 낙이었습니다.



하지만 운동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던 것이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술자리'였습니다. 땀 흘린 뒤 마시는 차가운 술 한 잔은 달콤한 보상 같았습니다. 운동하고 술 마시고, 다음 날 다시 운동하는 일상의 반복. 몸은 분명 피곤했을 텐데도 청춘이라는 이름의 엔진은 아침이면 다시 저를 거뜬히 약국 카운터 뒤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건강을 지키는 방식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제 술잔의 온도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젊음이라는 방패가 얇아진 탓일까요, 아니면 몸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 때문일까요? 예전 같지 않은 숙취와 '다음 날의 피로'라는 압박은 자연스럽게 음주 습관을 변화시켰습니다.



평일에는 술잔을 내려놓고, 가끔 지인들을 만나는 주말 저녁에만 가벼운 반주로 갈증을 달랩니다. 예전처럼 취기에 기대어 밤을 지새우기보다, 다음 날의 가뿐한 컨디션을 지키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운동이 '배출'의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유지'와 '조절'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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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치킨집 사장님은 저에게 묻는 듯했습니다. "그때 그 열정적이었던 약사님,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그녀의 질문에 저는 미소로 답했습니다. 비록 그때처럼 매일 밤 코트를 누비고 술잔을 기울이진 않지만, 이제는 절제의 미덕을 아는 중년의 약사가 되었다고 말이죠. 맹목적으로 달렸던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고요한 휴식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제 모인 동료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먼 곳에서 달려와 늦은 시간 얼굴을 마주하는 이유는, 단순히 치킨을 먹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의 변해가는 모습을 확인하며 위로받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젊은 날의 무모했던 열정이 인생의 '메인 경기'였다면, 지금의 우리는 경기를 마친 후 나누는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기억의 저편에서 불쑥 나타나 "참 열심히 살았다"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나요? 그 우연한 만남이 오늘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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