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우리 교회 음악 PD 'K 집사'의 간증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늘 밝은 미소와 유쾌한 유머로 에너지를 전해주던 분이었기에, 그가 덤덤하게 풀어놓는 과거의 이야기는 더욱 예기치 못한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극심한 허리 디스크로 고통받았던 시간을 고백했습니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감각. 디스크가 터지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너무나 쉽게 무너집니다. 세수를 하려고 허리를 숙일 때, 밥 한 끼 먹으려 자리에 앉을 때, 다시 일어서려 힘을 줄 때... 일상의 모든 찰나가 칼날 같은 통증으로 물듭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육체는 곧 감옥이 됩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들고, 삶의 질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시련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육체의 고통이 겨우 잦아들 무렵, 그에게는 아내의 유방암 소식이라는 더 큰 파도가 덮쳐왔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디스크에서도 해방되고, 유방암으로 인한 고통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상 속 그는 울음 섞인 감사를 전하면서도, 중간중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았습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을 닦으며 웃게 만드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사람마다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고 말이죠.
흔히 종교에 깊이 심취한 이들을 보면, 삶의 가장 고단한 길목에서 신을 찾은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이나 고통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무언가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복을 빌기 위함이 아닙니다. 무너진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교회라는 공간이, 혹은 각자의 신앙이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주는 것이지요.
저 또한 매주 주일 아침, 고요한 예배당에 앉아 묵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은 제게 일주일간의 소란을 잠재우는 '평안의 요새'와 같습니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지난 한 주를 되짚어 봅니다. 나의 부족함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내 욕심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반성합니다.
이러한 성찰은 결국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문턱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겸허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언젠가 다가올 마침표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평온하게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끔은 강제로라도 멈춰 서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든, 한 권의 책이든, 혹은 깊은 명상이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혼자 조용히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겉보기에 젊고 유쾌해 보이는 K집사의 삶 뒤에 깊은 상흔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걷고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 잠시 화면을 끄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