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기대가 컸습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향 좋은 커피가 집 안에 퍼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래전에 자동 커피 머신을 구매했습니다. 원두만 채워 넣으면 카페 못지않은 커피를 집에서도 마실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백화점에서 여러 제품을 둘러보다가, 결국 아내의 선택으로 한 제품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꽤 잘 사용했습니다. 갓 볶은 원두를 채워 넣고, 물통에 물을 보충하고, 한 잔씩 내려 마시는 시간이 나름의 작은 즐거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과정’이 점점 번거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잔 내리면 금세 찌꺼기가 쌓여 통을 비워야 했고, 물통을 씻고 다시 채워야 했습니다. 원두가 떨어지면 냉장고를 뒤적이며 찾아야 했습니다. 커피 맛은 분명 좋았지만, 그 맛을 얻기까지의 수고가 점점 부담이 되었습니다.
바쁜 아침, 아내는 결국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카누를 타서 텀블러에 담아 들고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빠르고 간단했습니다. 그렇게 자동 커피 머신은 점점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고, 싱크대 한쪽을 차지하다가 결국 창고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편리함이 맛을 이긴 순간이었습니다.
얼마 뒤, 정수기를 교체할 시기가 되어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커피 정수기’라는 제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캡슐만 넣으면 물을 따로 채울 필요도 없이 바로 아메리카노가 내려왔습니다. 따로 공간을 차지할 필요 없이 정수기가 커피 머신 역할을 겸하니 편리하고 주방도 넓어지는 두 가지 장점이 크게 보였습니다.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출근 전 1분도 아쉬운 시간에 버튼 한 번이면 커피가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에 따른 대가도 있었습니다. 커피의 맛이었습니다. 저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아내는 늘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캡슐은 특정 회사 제품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제품을 넣었을 때 기계가 바로 멈춰버리는 경험을 한 이후로는 선택의 폭도 자연스럽게 좁아졌습니다. 편리함은 넓어졌지만, 자유는 줄어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늘 더 나은 것을 찾습니다. 더 편리한 것, 더 빠른 것, 더 효율적인 것을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내어주게 됩니다. 맛을 선택하면 번거로움이 따라오고, 편리함을 선택하면 깊이가 조금씩 옅어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완벽한 선택’을 기대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완벽한 선택은 없고, 다만 내가 감수할 수 있는 불편의 종류만 다를 뿐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이제는 무엇이 더 좋은지를 따지기보다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커피 한 잔도 그렇습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맛을 택할지, 맛을 조금 내려놓고 시간을 아낄지. 그 선택의 기준이 곧 지금의 삶의 방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사소한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하루의 결을 만들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더 좋은 것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을 스스로 납득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