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던 교회 대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의령에 있는 기도원으로 갑니다. 부산에서 왕복 네 시간. 예전에는 그 시간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만개한 벚꽃과 살랑이는 봄바람을 차창 너머 고속도로의 뒤안길로 흘려보내기엔, 제 마음과 컨디션이 조금 지쳐 있었나 봅니다. 뻐근한 허리와 떨어지는 기운을 핑계 삼아, 지난 주일은 '익숙함' 대신 '쉼과 낯설음'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걸어서 20분 거리의 대형교회로 향하는 길. 차를 타는 대신 아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현관문을 나설 때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우리 집 강아지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더군요. 맞벌이라는 핑계로 한 달에 산책 횟수를 손가락에 꼽을 만큼 게으른 주인이지만, 오늘만큼은 온전히 봄의 햇살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길가에는 벚꽃이 팝콘처럼 하얗게, 때로는 연분홍빛으로 터져 있었습니다. 해마다 피는 꽃인데도 볼 때마다 왜 이리 마음이 일렁이는 걸까요?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핑크빛 꽃잎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휴대폰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핑크빛은 사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여움과 욕심으로 꽉 차 있던 마음 한구석을 벚꽃의 색감이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기분. 봄바람은 그 마음의 흐름에 돛을 달아주어, 제 안에 숨어있던 따뜻함과 여유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예배 시작 20분 전, 일찍 도착한 교회 로비에서는 십자가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를 다니던 제게 대형교회의 규모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죠. 하지만 그 압도감은 이내 경건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성가대와 소규모 악단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공연장 같은 예배홀을 가득 채웠습니다. 웅장한 소리의 울림이 귀를 타고 내려와 심장을 울릴 때, 저는 빈자리 하나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주일 아침, 이토록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득 산책길에 보았던 벚꽃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휴대폰을 꺼내 들게 했던 그 핑크빛 사랑 말입니다. 2000년 전,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생애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도도하게 흐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무가 아니라, '나를 던져 타인을 구하려 했던 우주 같은 사랑' 때문이 아닐까요?
벚꽃이 봄바람을 타고 우리 마음을 적시듯, 그분의 사랑 역시 시대를 타고 내려와 지친 영혼들을 이 커다란 예배당으로 불러 모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그 거대한 사랑의 중력이,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것이겠지요.
먼 길을 달려가지 않아도, 익숙한 자리를 잠시 떠났을 뿐인데 벚꽃의 연분홍빛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읽고, 웅장한 찬양 속에서 그분의 깊이를 느꼈습니다. 몸의 피로는 덜어내고 마음의 풍요는 채운 시간. 여러분의 봄날도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