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어머니의 팔순을 맞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요즘은 백세 시대라 환갑은 생략하고 지나가는 추세라지만, 자식들 마음은 또 그렇지 않더군요. 칠순과 팔순만큼은 부모님의 삶을 깊이 예우하고 감사를 전해야 하는 소중한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가족이라 해봐야 외삼촌 내외분과 동생 부부, 그리고 우리 식구들이 전부인 조촐한 식사 자리였지만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생신상이었습니다. 특히 영국계 회사에 다니는 동생은 런던에서 비행시간만 꼬박 20시간이 걸리는 강행군을 마다치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오게 만든 동력은 아마도 ‘어머니’라는 이름의 무게였을 겁니다.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눈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언젠가부터 시야가 안개 낀 듯 흐릿하고, 아무리 눈을 비벼봐도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안과 검진 결과는 백내장. 이미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상태라 수술이 권유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운영하는 약국 건물에는 실력 좋기로 소문난 안과가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워낙 친절하시고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곳이라, 어머니는 고민 없이 아들이 있는 이 건물 안과에서 수술을 받기로 하셨습니다.
지난 화요일, 왼쪽 눈 수술을 무사히 마치셨고 어제는 수술 후 점검을 위해 다시 병원을 찾으셨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 잠시 들른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수술한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는 이미 벗겨진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밝은 미소 속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그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습니다.
"아빠, 할머니가 충격이시래"
저녁 무렵, 딸아이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할머니와 통화했는데, 할머니께서 적잖이 충격을 받으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빠, 할머니가 수술하고 나서 거울을 보셨는데... 본인 얼굴에 주름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대. 그리고 집에 가보니까 먼지가 말도 못 하게 쌓여 있어서 지금 막 청소를 하고 계신대요."
딸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지난 몇 년간 어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깔끔하신 분이었습니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 한 톨 허락하지 않으셨고, 물건들은 늘 제자리에 칼처럼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머니 댁에 갈 때마다 집안 여기저기에 먼지가 쌓여 있고, 정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무심하게, 아니 생각 없이 어머니에게 핀잔 섞인 농담을 던졌습니다. “엄마, 청소 좀 하고 지내세요. 집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가 게을러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었습니다. 당신의 얼굴에 깊게 팬 세월의 흔적도, 거실 구석에 소리 없이 내려앉은 생활의 먼지들도, 어머니의 흐릿해진 눈에는 그저 부드러운 풍경의 일부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아서 청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셨을 어머니에게, 아들이라는 사람은 그저 보이는 결과만을 두고 어머니의 정성을 의심했던 셈입니다. "지저분하다"라는 제 말 한마디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분투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생채기를 냈을지 생각하니 뒤늦은 죄송함이 밀려왔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세상이 흐릿해지는 속도에 맞춰 당신의 상처와 집안의 흐트러짐도 적당히 외면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그 평화를 깨뜨린 것이 아들의 모진 말이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다음 주면 이제 오른쪽 눈도 수술을 받으십니다. 양쪽 눈이 다 밝아지고 나면, 어머니는 여든이 넘은 연세에 비로소 세상을 다시 ‘선명하게’ 마주하게 되실 겁니다.
지금 밖에는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팝콘처럼 터진 하얀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이제 밝아진 눈으로 어머니가 보실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거울 속의 주름이나 방 안의 먼지 같은 서글픈 것들 말고, 세상의 눈부신 꽃들과 자식들의 환한 얼굴,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고귀한 시간의 빛깔들을 오랫동안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찾은 광명(光明)이 어머니의 남은 생을 환하게 비춰주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이제 저도 어머니 댁에 가면 핀잔 대신 걸레를 먼저 들겠습니다. 어머니의 밝아진 눈이 오직 아름다운 것들만 담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가끔 부모님의 '변화'를 '노화'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치부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 뒤에 숨겨진 불편함과 상실감을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진짜 효도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시야는 오늘 안녕하신가요? 수술 후 청소기를 돌리신다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다정한 목소리로 안부 전화를 드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