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좋아했던 직원이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며칠 전에도 세 시간이나 지각을 했던 터라 마음이 더 쓰였다. 한 달 남짓 남은 근무 기간 동안만큼은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랐는데, 그 기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유독 마음이 가던 직원이었다. 앞서 한 번 글로 남겼던 그 아이, 03년생 민서였다. 첫인상부터 밝고 단정했고, 일도 야무지게 잘했다. 눈치도 빨라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먼저 찾아 하는 아이였다. 가끔 지각을 하기도 했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 아이를 더 좋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부산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생활하는 모습이 늘 대견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객지에서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모습이 어딘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직원이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오후 3시가 넘어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메시지도 닿지 않았다. 그때부터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지각이 아니다.’ 사고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결국 경찰서를 찾았다. 실종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적 사항을 전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사진을 전송했다. 경찰서 유리창 너머로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거리에는 봄이 가득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사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번갈아 올라왔다. 수십 번도 더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때, 카카오톡 알림이 떴다. 민서였다. 어젯밤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려 고장이 났고, 아침에는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어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작년 가을의 기억이 떠올랐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일, 몸이 굳어 움직이기 힘들었다던 이야기들. 한 달 정도 쉬고 나서 괜찮아졌다고 했던 기억까지 함께 떠올랐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과 ‘그래도 연락 한 통은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머리를 스쳤다.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 뒤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앉았을 때, 마음이 한 번에 가라앉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사실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 그 시간이 더 힘들었다. 연락이 닿지 않던 그 몇 시간 동안,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걱정했던 시간. 그리고 결국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늦게 도착한 한 통의 메시지. 그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잠시 휴대폰을 빌려서라도, 공중전화라도 찾아서라도, 짧은 연락 한 통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황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로, 그 무심함이 더 크게 남았다. 신뢰는 시간을 들여 쌓이지만, 무너지는 데는 순간이라는 말을 그날 실감했다.
“나를 이렇게까지 걱정하게 만들었는데, 그걸 몰랐을까?”
“그 정도의 배려도 없었던 관계였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진다는 말처럼, 마음을 많이 준 만큼 그 틈도 깊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민서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동안은 그 선택이 맞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관계는 일의 문제를 넘어서 결국 ‘신뢰’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신뢰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 그날 경찰서 창밖에 흩날리던 벚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은 그렇게 조용히 끝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