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의 양면성

by 시에스타

같은 건물 5층에는 피부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이 있습니다. 시술을 마친 환자분들은 얼굴에 듀오덤을 붙인 채 약국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생제를 처방받기도 하고, 기미나 색소침착을 완화하기 위한 약을 함께 받아 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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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가 트라넥삼산입니다. 이름은 낯설지만, 사실은 출혈을 멈추는 데 사용되던 약입니다. 우리 몸에서 만들어진 ‘지혈 딱지’, 즉 혈전이 너무 빨리 녹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상처 위에 쌓아 올린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지켜주는 방패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코피나 잇몸 출혈, 수술 후 출혈 같은 상황에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약이 피부 치료에도 활용됩니다. 피부가 자외선을 받으면 ‘플라스민’이라는 물질이 증가하면서 멜라닌 생성 신호가 강해집니다. 트라넥삼산은 이 플라스민의 작용을 억제해, 색소가 과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단합니다. 자외선이 색소 공장에 “더 만들어!”라고 신호를 보내는 상황에서, 그 전달을 중간에서 끊어주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미 생긴 기미를 없애기보다는, 더 짙어지는 것을 막고 피부 톤이 어두워지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였습니다. 식사 후의 나른함을 느끼며 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한 환자분이 처방전을 건넵니다. 접수 직원이 바코드로 입력을 마치고, 복약지도 코너 모니터에 정보가 뜹니다. 50대 여성분, 트라넥삼산이 포함된 처방이었습니다. 처음 방문하신 분이라 간단하게 약에 대해 설명을 드리며 몇 가지를 더 여쭈었습니다.


“기저질환 있으세요?” 환자분은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뇌경색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있어요.” 순간 손이 멈췄습니다. 트라넥삼산은 혈전이 쉽게 녹지 않도록 돕는 약입니다. 반대로 뇌경색 치료에 사용하는 약은 혈전을 녹이거나 생기지 않도록 막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서로 반대 방향의 작용입니다. 이미 혈관이 막힌 경험이 있는 분에게 이 약을 사용하면, 혈전이 더 오래 유지되거나 다시 막힐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막힌 배수구를 뚫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굳혀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병원에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한 뒤 처방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환자분께도 이유를 설명드렸습니다. “기미를 치료하려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환자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약국 문을 나서는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습니다.


기미 치료제라고 하면 비교적 가볍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약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쓰면 도움이 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실천해야 하는 기본적인 확인입니다. 알레르기가 있는지,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 현재 어떤 약을 복용 중인지. 짧은 몇 마디의 질문이 한 사람의 위험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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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약을 건네며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약은 언제나 치료와 위험 사이, 그 경계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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