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삶을 채우는 사랑, 사랑의 공허함으로 붕괴되는 삶
헤어질 결심, 7월 초에 이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보았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다시 보았다.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는 결심은 없었지만 같이 보자는 자매가 있어서 갑자기 다시 보게 되었다. 지난번에 보다가 졸았다나 잤다나... 그러니 '우연히' 다시 보게 된 것이 맞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도 '홍산오'의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오늘은 작정하고 그의 말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하여 캄캄한 극장 안에서 몰래 받아 적었다.
'홍산오'는 미용사인 애인이 밥벌이로 사용하던 가위로 자기 목을 그으며 울부짖는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이 말은 사랑이 있어서 인생이 공허하지 않았다는 뜻이겠다. 소년원에서 겪은 지독한 일로 감옥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홍산오가 살인을 하게 만든 일, 다시 말해서 죽기보다 싫어하는 감옥을 갈 수도 있는 사건을 벌이게 만든 것은 사랑이다. 이것은 순정이다.
이러한 홍산오의 순정을 알아채는 사람은 '서래'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밀항하는 배 안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견뎌야 했던 서래가 도착한 한국에서의 삶 안에는 폭력적인 남자들이 있다. 피폐하고 공허한 삶이다. 서래의 텅 빈 삶을 채워주는 것은 형사 '해준'이다. 해준은 서래를 지켜주고 먹여주고 챙겨준다. 잠복을 핑계로 밤새워 지켜주고 고급 초밥을 먹여주고 칫솔에 치약을 짜주며 챙겨준다. 하여 서래는 순정을 알게 된다.
해준은 왜 서래를 챙겨주었을까? 어떤 사랑은 모래시계 같다. 사랑의 힘은 중력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저절로 텅 빈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서래의 공허함이 '사람 해준'의 순정으로 채워질 때 '형사 해준'은 붕괴한다.
영민한 서래는 모래시계 같은 이 사랑의 결말을 안다. 둘 다 동시에 채워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더욱 공허하다. 공허함을 채워주었던 사랑은 완성되지 못하고 모래 웅덩이 같은 더 큰 공허를 만든다. 결국 서래는 자신의 순정을 모래 속에 묻는다. 더 이상 치욕은 없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끊임없이 공허하고, 무너짐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유한함의 치욕이다. 그나마 사랑이 있어 공허함이 채워지고 무너져도 다시 세워진다. 결국 사랑으로 다시 붕괴하고 공허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