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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Sep 05. 2022

정인한의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

단단한 사람, 정인한




손님이 없어 카페 운영에 도움이 될까 싶어 경제지리학 책을 읽고 지형학, 기후학, 인구 지리학, 교육철학, 교육사회학, 교육심리학 책을 읽었다는  부분에서 웃음이 났다. 학교 선생님을 꿈꾸었던 분이라서 공부를 좋아하나 낄낄, 그런 생각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는 책을 보면서 잡다한 생각들이 걱정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낸 것이다.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책을 보는 시간을 통해 그랬던 것이다. 다달이 적지 않은 금액의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도 마음속 불안이 컸을 것이다. 그는 불안이 크다고 불안의 그늘을 크게 만들어 자기를 숨기지도 않고 가족을 가두지도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이른 일곱 시에 카페 문을 열고 드문드문 오는 손님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 정인한의 마음은 단단한 돌멩이들이 깔려있는 어항 같다.


물고기를 길러 본 적이 있다. 아이가 친구가 준 조그만 물고기를 받아와 몇 마리 기르게 된 것인데 처음에는 작은 어항에 물과 물고기만 달랑 넣어 두었었다. 며칠 지나고 보니 어항 바닥에 물고기의 분비물도 가라앉아  물고기들이 바닥 쪽으로 헤엄쳐 내려가면 그것들이 물의 흐름을 타고 어항 안의 물 전부를 뿌옇게 만들어 버렸다.


작은 자갈돌들을 구해 어항 바닥에 깔았다. 그랬더니 물이 맑아졌다. 지저분하게 떠다니던 찌꺼기들이 돌 틈 아래로 내려가 버려서 물고기들이 수면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빠르게 헤엄을 쳐도 물은 지저분해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SNS를 통해 정인한의 글을 여러 번 읽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내 마음에도 단단한 돌멩이가 하나씩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개운해졌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남해라는 땅에서 카페를 하는, 총각도 아닌 사내의 찬찬히 꾹꾹 눌러쓴 일상의 글이 의지가 되곤 했다. 혼탁한 마음이 깨끗해지곤 했다. 사는 일이 비루하다 싶어 널브러져 있던 어느 낮에 그의 글을 마시고 반짝 일어난 적도 있다.


그는 카페를 하면서도 글에서 커피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커피를 추출할 때는 어떠해야 한다든지 하는 전문가의 문장은 없다. 작은 물고기들처럼 명랑한 두 딸의 이야기가 있다. 아내인 정애씨의 이야기도 가끔 있는데 숨겨두고 혼자 보고 싶은 귀한 것을 살짝 보여주는 것처럼 스윽 내민다. 이런 이야기들의 바탕에 사람 정인한의 이야기가 단단한 돌멩이처럼 깔려있다.


이 책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가족을 만드는 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소개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내밀듯 툭 권하고 싶다.


우리 집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이곳은 스마일 도장 열 개를 모으면 커피를 한 잔 무료로 준다. 나는 쿠폰을 만들지 않았는데 어느 날 사장님이 도장이 열 개 찍힌 쿠폰을 내밀면서 오늘은 이 쿠폰 쓰세요 그런다. 제가 만들어 두었어요 그러면서 구름 같은 거품을 얹어 카푸치노를 한 잔 말아주셨다.


무척 피곤한 날이었는데 순식간에 피곤이 사라졌다. 입술에 구름을 묻히고는 공원을 바라보며 혼자 헤헤실실 웃었다.


정인한의 에세이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을 두 권을 샀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나오면서 사장님께 한 권 선물했다.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받는다.


'뇌물이에요. 앞으로도 카푸치노 잘 말아주세요.'


나의 실없는 농담에 씨익 웃으면서 책 표지를 본다.


잘 부탁드립니다, 총각 사장님!!


#정인한


#너를만나알게된것들


#좋아서하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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