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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an 18. 2023

하나의 시공간에서


점심 같이 먹자고, 돈가스 먹자고, 한 시까지 오라고 아들을 불렀다. 이십 대 초반의 입맛을 고려한 메뉴 선택이었다. 망설임 없이 좋단다. 나는 부드러운 안심 가스를 먹고 아이는 쫄깃한 등심 가스를 먹는다. 나는 소스를 찍어 먹고 아들은 소금만 뿌려 먹는다.    

  

이십 대 초반의 남성과 오십 대 중반의 여성이 엄마와 아들로 마주 앉아 각자의 취향대로 맛있게 먹었다. 입맛은 다르지만 한 식탁에서 각자가 만족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이었다.     


밥값을 아들이 냈다. 후식은 내가 사주겠다고 하고 근처에 가보고 싶은 카페를 검색해 보라고 했다. 일이 분 정도 핸드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더니 끌리는 곳이 있다고 내게 보여준다. 커피와 함께 도넛을 파는 가게였다.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카페는 밝고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계산대 아래에 놓인 유리 냉장고에는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와 도넛이 여러 종류 진열되어 있었다. 이름을 살펴보니 ‘순 우유’ ‘얼그레이’ ‘솔티캐러멜’ 등등 요즘 유행하는 맛의 표현들이 들어있다.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아들은 아이스 아인슈페너라는 우유가 섞인 차가운 커피 위에 달콤한 크림이 잔뜩 올라간 커피를 시켰다. 도넛도 고르라고 했다. ‘순 우유 크림 도넛’과 ‘얼그레이 크림 도넛’ 두 가지를 고른다.      


커피 두 잔에 만원이 넘는다. 하나에 사오천 원 하는 도넛 두 개를 합하니 이만 원 돈이다. 순 우유 도넛에 들어있는 크림은 어릴 때 동네 슈퍼에서 백 원 주고 사 먹던 보름달 빵 속에 들어있던 크림과 맛이 같다. 그러나 이 말은 못 한다. 나 혼자 생각하면서 도넛과 같이 삼킨다.     

 

아들이 자기가 찍은 자기 사진을 보여준다.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매장을 둘러보니 그럴듯한 배경 앞에 큰 거울이 있다. 그 앞에서 젊은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게 요즘 유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앞에서 이십 대의 청년들처럼 천진한 웃음을 지으면서 검지와 중지로 알파벳 브이자를 만들면서 사진을 찍지는 못한다. 그저 혼자 웃으며 바라만 본다.      


도넛과 커피는 맛이 그저 그렇다. 아들은 만족스럽단다. 커피도 ‘독특’하고 도넛도 ‘달콤’하고 좋단다. 나는 그 ‘독특’함과 ‘달콤’함이 좋지 않았다. 아주 싫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낸 돈값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 비싼 것 같다고 하자 아들은 요즘은 다 이 정도 가격이라고 한다. 아마 전신 거울이 놓인 곳에서 사진 찍는 값이 포함된 가격 같다.   

   

돈가스라는 음식으로 입맛은 다르지만 한 식탁에서 각자가 만족하고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고, 수제 도넛이라는 후식으로 한 탁자에서 각자 만족도가 다른 그러나 서로 다름을 티 내지 않는 티타임을 했다. 그러나 그럭저럭 괜찮은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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