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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28. 2023

내가 빵을 굽다니, 찬장 속 밀가루가 웃을 일이다

-동화작가 박채란의 쿠킹 에세이






초코 쿠키를 만들던 밤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잠이 오지 않으면 쿠키를 구웠었다. 


버터를 녹이고 설탕을 조금씩 넣어 휘저어준 후에 밀가루와 초코칩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오븐을 예열하고 커다랗고 네모난 금속 쟁반에 숟가락으로 쿠키 반죽을 떠 놓은 후 달아오른 오븐 속에 넣어주었다. 타지 않게 잘 지키면서 십오 분에서 이십 분 정도 구워야 한다. 


쿠키를 구울 때는 오로지 쿠키에 집중해야 한다. 밀린 관리비가 얼마인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거나 집 나가 소식 없는 사내의 매정함을 탓하는 마음을 갖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반죽 위의 초콜릿이 녹아 몽글거리면 딱딱하던 마음도 같이 녹았다. 버터와 설탕이 섞인 달콤함이 집 안에 퍼지면서 쓸쓸함과 고단함을 덮었다. 


쿠키가 따뜻하고 부드럽고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면서 깊은 밤 가득 고소함이 퍼지면 어느덧 일상의 불안은 사라지고 마음도 초코 쿠키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고 둥그레졌다. 


뜨거운 쿠키를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어 식히면서 내일 아침 한 입 베어 물고 행복해할 아이들 모습에 마음도 거풍이 되곤 했다. 소소하게 무언가를 만들면서 시간을 견디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제 새로 낸 책을 내게 선물하고 싶다고 박채란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빵을 굽다니, 찬장 속 밀가루가 웃을 일이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와 나는 같은 동네 살지만 서로 만난 적은 없다. 작가와 독자로 페북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재작년은 코로나가 아주 극심했다. 코로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갈 수 없게 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두 어린이를 데리고 작가는 매일 빵을 굽고 과자를 만들었다. 심지어 떡도 빚고 쪘다. 그리고 이 과정을 페북에 일기처럼 써서 올렸다. 


나는 어느 날은 빵 사진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고 또 어느 날은 쿠키 사진을 보면서 군침을 흘렸다. 절편이며 단호박설기 같은 떡 사진을 보면서 탐구심과 끈기에 경탄했다. 버터와 설탕과 밀가루, 혹은 쌀가루를 이용해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 코로나를 견디는 모습은 내게도 견디는 힘을 주었다. 


가끔 그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았다. 먹고 싶다고 쓰기도 했고 내가 알고 있던 과자나 빵 만드는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초코소라빵 만드는 요령에 대해 댓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책에 그 내용이 들어있단다. 영광이다. 




오늘 제주살이 이 년을 마치고 내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오는 김미희 작가와 같이 만났다. 어제 박채란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두 사람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번쩍 떠올라서 급 만남을 주선했다. 둘 다 아직 초등학생 학부 모니까. 


두 분은 처음 보는 자리인데도 마치 잘 아는 자매들처럼 반가워하면서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나는 보리밥과 나물을 넣은 비빔밥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늘은 인연과 인연이 중첩되는 신기한 날이다.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과 초콜릿 칩이 만나 달콤한 행복을 주는 쿠키가 되듯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따뜻하고 다정한 인연으로 부푼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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