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Mar 05. 2023

기억의 손바닥에는 손금 같은 골목이 있고

-사라지는 풍경/정영주 그림


커다란 화폭에 기와지붕이 한가득 들어차 있다. 다닥다닥 붙은 납작한 집들에 검푸른 밤이 온다. 밤은 골목을 돌며 노란 등을 켠다. 높은 전봇대에 매달린 노란 불빛은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오늘도 수고했어. 고생했어. 화가가 그린 그림은 밤의 풍경이지만 그 그림 속에서 내가 떠올린 시간은 아침이며 낮, 그리고 밤이다. 모든 시간이다.




나는 집에서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흑석동까지 한 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야 했다. 등교 시간과 출근 시간과 겹쳐 만원 버스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 차라리 학교에 일찍 갔다. 그러니 첫 수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곤 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하면 학생회관 건물에 있던 동아리방으로 갔다. 헉헉거리며 약대와 의대 사이 중앙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경사지고 휘어진 비탈길이 나온다. 걸음이 느려진다. 숨을 고르면서 발밑만 보고 천천히 올라가다 문득 고개를 들면 학교 아래 동네 풍경이 보였다.




아침의 연한 금빛이 덧칠해진 먹빛 기와지붕들이 줄지어 있다. 그 사이로 가느다란 틈이 보인다. 골목이다. 내 손바닥의 손금 같기도 하고 손등의 푸르고 가느다란 모세혈관 같기도 하다. 저기 살짝 구부러진 저곳은 친구 집 근처이다. 공강 시간에 친구의 작은 자취방에 둘이 누워서 했던 첫사랑 이야기가 창틈으로 번진다.




잔가지처럼 가늘고 길게 뻗은 골목을 두 마디쯤 지난 곳, 그 전봇대 근처는 내가 짝사랑했던 선배가 살던 집 언저리 같다. 좋아한다는 말도 못 했었지. 어느 밤 혼자 무작정 그 집 앞까지 갔었지. 그리고 전봇대 노란 불빛 아래 오래오래 서 있었지. 유행가 가사처럼 불 꺼진 창을 바라보면서.




졸업 후 십여 년이 지난 후 학교에 갔던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내려다본 풍경에는 더 이상 그 먹빛 지붕들이 없었다. 맑은 날 아침이면 금빛 햇살을 비늘처럼 반짝이며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보는 것 같던, 감탄하며 한참을 바라보던 그 지붕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손금 같은 골목들도 보이지 않았다. 내 짝사랑을 지켜주던 전봇대도 뽑혀버렸다. 여러 층높이로 개량된 네모난 다세대 주택들만 가득했다. 낯선 풍경은 잘 지워지지 않는 불량 지우개로 문지른 그림처럼 얼룩덜룩했다.




정영주의 ‘사라지는 풍경’이라는 작품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기억 속에서는 사라지지 않는 풍경들이 있다. 그때 그 시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잔잔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시간이란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얇은 켜로 겹겹이 쌓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추억 속의 풍경은 손바닥을 펼치면 언제나 보이는 손금처럼 사라지지 않는 풍경일 것이다. 내 마음속에 내가 그리고 색을 입힌 그림이다.




작년 여름 학고재 갤러리에서 정영주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관련글 링크 http://www.hakgojae.com/page/1-3-view.php?exhibition_num=434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빵을 굽다니, 찬장 속 밀가루가 웃을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