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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l 18. 2023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삶을 파괴하는 말에 지지 않기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삶을 파괴하는 말에 지지 않기/아라이 유키     



최근 뉴스 제목에 ‘시럽급여’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 말은 구직을 돕기 위해 쓰여야 할 ‘실업급여’가 명품을 사거나 해외여행을 하는 경비로 쓰인다는 비하와 조롱이 담겨있다. 구직과 무관하게 돈이 쓰였다는 비난을 담고 있다.   

   

실업급여는 사용할 수 있는 소비의 항목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 원래 뜻을 폄훼해 나쁜 말로 변해버려서 받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데도 주눅 들게 한다. 나는 돈을 그렇게 쓰지 않는다는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게 한다.      


‘시럽급여’라는 말은 정치권의 특정한 의도가 담긴 말을 언론이 전하면서 만들어졌다. 본래의 뜻과 달라진 이상한 말로 변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뜨악한 눈길로 쳐다보게 만든다. 구직을 하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밀려나 버렸다.      


정부가 구직자들이 실업급여를 명품 소비나 해외여행에 사용한다는 말은 실업급여 지급액을 줄이려는 의도가 숨어있는데 그 의도는 희석되어 버렸다. 노동자가 실업을 대비해 고용보험을 들어서 받는 돈이다. 거저 받는 돈이 아닌데도 눈치 보게 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      


아라이 유키의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이라는 책은 말이 거칠어지면서 삶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말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다고 말한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이상한 말을 만들고 거친 말을 뿌리고 말을 무너뜨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이상한 말에 익숙해져 버린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상처 입고 쓰러진다.      


하지만 사람을 쓰러뜨리는 말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도 말이다. 작가는 삶을 파괴하는 말들에 지지 않기 위해서는 빈약해진 말을 치우고 말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거칠게 상처 주는 말을 막아내고 격려와 회복의 말을 찾아내야 한다고도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문학을 예로 든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나는 이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문학은 생존이나 생활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쓸모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애착 인형처럼 영혼을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해준다.      


나는 문학으로 자기 영혼을 구한 사람을 알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돈 버는 일을 계속했던 그는 퇴직 후 원 없이 책을 보면서 지냈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 그가 한 말을 기억한다. 종일 음악 들으면서 책 읽으면서 사는 게 꿈이라는 말.     


고단하게 일하는 동안에도 책은 항상 그의 옆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주 다양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고단한 독학생이었을 때도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나이가 더 들어서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에게 책은 돈으로 구해야만 하는 쌀로 지은 밥 대신에 허기를 채우는 밥이었을 것이다. 소유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먹고 나서도 줄지 않아 갚아야 할 빚이 되지 않는, 책은 그에게 그런 밥이었던 것 같다. 또한 삶의 고통을 누그러뜨려 주는 진통제 역할도 했으리라.     


책을 먹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그는 지금도 여전히 밥처럼 책을 먹는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밥심으로 기운을 낸다면 그는 책을 읽으면서 활기를 얻는 것 같다.      


이제는 스스로 책으로 밥을 짓는다. 그는 밥을 지으면서 쌀의 성분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밥이 되는 쌀과 물의 비율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쌀을 씻고(책을 읽고) 밥을 끓이고(정리하고) 뜸을 들여(독후감을 쓰고) 상에 올린다. (SNS에 올린다.)      


그 밥을 영혼이 허한 사람들에게 차려준다. 그가 차리는 밥상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모여 앉아 그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빈자와 부자 나누지 않고 모두 똑같이 숟가락 하나씩 들고 모여서 먹는다. 그는 밥값도 받지 않는다.    

 

일찍이 독서를 통해 생의 위로를 얻는 방법을 깨친 그는, 지금은 그 위로를 나누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말이 모인 책을 통해 만든 힘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삶을 파괴하는 말들에 지지 않기 위해서 빈약해진 말을 거르고 말의 존엄성을 찾아 보여준다. 거칠게 상처 주는 말 대신에 곰인형처럼 포근하게 안기는 격려와 회복의 말을 찾아내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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