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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19. 2023

아는 말로 써진 아는 맛의 이야기

-위영금의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우연히 출판평론가이신 김성신 선생님께서 올리신 북토크 광고 포스터를 보았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탈북민 작가의 그리움을 담은 이북 음식 50가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밥’이라는 말과 ‘울컥’이라는 말이 나를 두드렸다.      



‘탈북민’이라는 세 글자를 발음하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는다. 뜻을 풀어 ‘북한을 탈출하여 나온 사람’이라는 말도 읽는 데 1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1998년도에 고향인 함경도를 떠나 중국을 거쳐 2006년도에 대한민국에 왔다는 설명이 붙으면 달라진다.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들어선다. 대한민국 땅에 발을 디디기까지의 아슬아슬한 삶이 느껴진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라는 책을 낸 위영금은 굶어 죽지 않으려 두만강을 건넜고,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그가 고향을 떠났던 때는 ‘고난의 행군 시대’라 불리는 시기로 1990년대 후반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던 시기다. 굶주림이 일상을 덮쳤고 많은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 나가던 때였다.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대기근이었다.     


그런 시기에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위태로운 중국 생활을 견디고 한국으로 왔지만 고향을 떠난 자의 외로움과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의 절절함이 음식의 이름으로 글이 되었다. 그가 고향에서 맛보았던 음식이고 북한에서 먹는 음식들이다.     

 

그런데 책 속에 글로 만들어진 음식들이 낯설지 않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뜯어서 채소와 함께 끓여 익힌 ‘뜨더국’은 내가 아는 수제비다.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쩡한 맛을 낸다는 함경도 명태 김치도 내 어린 날의 김장김치를 생각나게 한다. 엄마의 고향인 강원도 김치도 함경도와 비슷했다.     

 

김장을 하는 날은 정릉 집 마당에 절인 배추 포기가 가득했다. 하얗고 커다란 겨울 무를 어린아이 손바닥만큼 크게 썬 것도 커다란 소쿠리에 넘치도록 담겨있고 내장을 빼고 손질한 명태를 토막 쳐서 물기를 빼고 준비한 것도 보인다. 엄마가 양념으로 버무린 배추김치를 항아리에 한 켜 넣으면 할머니는 무와 명태를 한 켜 넣었다. 항아리 바닥에도 무를 깔고 김치를 다 넣고 맨 위에도 무를 덮었다. 그리고 김치 양념이 들어있던 커다란 함지박에 물을 부어 헹군 양념 물을 항아리에 부어주었다.   

   

겨울이 깊어지고 김장김치에 맛이 들면 밥상에는 썩썩 썰어낸 포기김치와 잘 익은 무가 담긴 보시기가 올라왔다. 어린 나는 커다란 무 조각을 젓가락에 꽂아 밥 한 숟가락 먹고 무 한 입 베어 먹곤 했다. 요즘 김치처럼 맵지 않았지만 어린 내게는 매웠다. 그래도 톡 쏘면서 시원한 맛이 좋아 매운 것을 참으며 혀로 입술을 핥아가며 먹었다.      



나와 나이 차이가 몇 살 나지 않는, 북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글로 표현한 명태 김치의 ‘쩡한 맛’이 남쪽의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어린 날의 맛을 기억나게 한다.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쓰는 말이 같고 먹는 음식이 같은 사람들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추석에 솔잎을 깔고 쪄낸 송편과 도토리를 말리고 가루를 내어 물을 많이 넣고 쑨 묵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이름마저 똑같다. 김치만두나 두부도 그렇다. 이 음식들은 이름만 들어도 그 모양이 눈앞에 그려진다. 따로 번역하거나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그리운 이북의 음식으로 표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철조망이 걷힌다면 그저 그리운 고향의 음식이 아닌가.     



북 토크 2부에서는 책에 나온 음식 몇 가지를 맛볼 수 있었다. 그중 ‘언감자떡’은 겨울에 얼어버린 감자에서 녹말을 뽑아내 만든 것인데 색만 검을 뿐 우리에게 익숙한 감자떡과 맛이 같다. ‘찰수수지짐’도 속을 넣지 않은 수수부꾸미 같다. ‘오이냉국’, ‘가자미식해’, ‘사과화채’도 아는 맛이다. 두부밥은 처음 먹어봤다. 고난의 행군 때 많이 먹었던 음식이라고 한다. 북 토크에 온 손님 한 사람마다 한 상씩 차려낸 정성에 놀랐다. 더운 날에 음식을 만드느라 여러 사람이 애를 썼겠다. 나는 차려준 음식을 양념 한 조각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아직도 북한에는 식량이 매우 부족하다니 차마 남길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한 밥을 먹겠다고 고향을 떠났고, 밥을 먹겠다고 무참히 비굴해야 했던 사람이 "밥 한번 먹자."라는 말에 울컥해진다고 한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말로 인사치레로 한 말일지라도.     


밥을 먹지 못해 가족을 잃었고, 밥을 얻으려 별일을 다 하는 경험을 한 이에게 밥은 곧 생명이고, 하늘이고 신(神)이어서 작가는 밥솥을 열었을 때 보이는 잘 익은 하얀 쌀밥에서 별을 본단다.      


이제 배는 고프지 않지만 그리움으로 허기진 작가 위영금의 밥이 반짝이는 별처럼 떠오른다. 갈라치는 철조망과 총칼이 없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얗게 윤이 나는 밥별이 그녀의 고향 밤하늘에서 거칠 것 없이 빛난다. 꼭 통일이 아니어도 그리움으로 빚은 책을 들고 기차를 타고 고향을 가서 고향 사람들과 함께 밥별을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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