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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17. 202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살게 될 것인감(感)?

-영화 그녀(Her)



잠결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금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을 간단하게 두 문장으로 적어 보낸 문자를 보고 걸어 온 전화였다. 전화의 내용도 간단했다. 어찌하다 그런 일이 생겼냐는 염려가 담긴 물음이었다. 전화로 설명하기 복잡해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짧게 답을 했다. 그리고 농담이 섞인 대화가 조금 오갔다. 나는 그 전화를 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전화를 받기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짤막한 대화가 위로가 되어 달게 잤다.      


한 사람에게 들어주는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내게 했다. 그가 만나자는 시간에 만났고 먹자는 음식을 먹었고 하자는 것을 했다. 걷고 싶다 하면 같이 걸었고 영화를 보자고 하면 함께 영화를 보았고 손을 잡자면 손을 잡아주었다.      


그는 내게 위로를 구했고 나는 그를 위로하려 애썼다. 같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말하면서 나는 들었다. 하지만 내가 듣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 내 의견을 말하고 우스개 소리도 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대화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처한 상황이 달라진 건 없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움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페이스북’이라는 SNS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키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고 묻는다. 기계가 사람들 당신의 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대화를 시도한다. 이제 기계가 사람에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세상이 되었다. 컴퓨터라는 기계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서 단순히 들어주기에서 ‘들어주고 들려주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영화 그녀(Her)는 사람과 기계의 대화에 관한 이야기다.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사만다는 눈에 보이는 실체는 없다. 하지만 사만다는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제공된 작은 기계에 달린 카메라로 주인공이 보는 것을 함께 본다. 이렇게 보고 들은 것으로 주인공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기분전환을 위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어울리는 여행지를 추천해준다. 주인공만을 위한 음악을 작곡해서 들려주기도 한다. 때로는 먼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의 컴퓨터 속에 들어있는 정보와 주인공과 주고받은 대화 속의 정보를 활용해서 컴퓨터라는 기계가 제작한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다.      


요즘 ‘챗GPT’라는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 화제다. 챗GPT는 사용자가 대화창에 텍스트를 입력하면 그에 맞춰 대화를 함께 나누는 서비스다. 공개 단 5일 만에 하루 이용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특히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논문 작성, 번역, 노래 작사·작곡, 코딩 작업 등 광범위한 분야의 업무 수행까지 가능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단순히 사용자가 대화창에 텍스트를 입력하면 그에 맞춰 대화를 함께 나눌 뿐 아니라 어떤 글을 줬을 때 다음 내용은 무엇인지까지 예측하며 답글을 생성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대화와 같은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지금은 글(문자)로 대화를 하지만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더욱 발달한다면 결국은 영화 속 ‘사만다’처럼 정보를 주고받으며 일상적 대화를 같이 ‘말’로 나누는 형태로 발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대화가 가능한 나만의 맞춤 이야기 상대가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전기가 있어야 하고 프로그램이 깔린 전자기기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친구에게 직장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를 하소연하고 같이 욕을 퍼붓고 싶어도 친구가 바쁘면 할 수 없다. 연인에게 다정하고 달콤한 말을 듣고 싶어도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살던 여자의 언어가 달라 해석이 부정확해지고 신경전을 벌이기 쉽다. 싸우고 헤어지기도 하고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인공지능 챗봇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불러올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응답할 것이다. 그동안 이루어진 나와의 대화 속 정보로 내 심리를 파악하여 지금 원하는 답을 줄 수도 있다. 혹시 내가 한 말에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말을 잘 이해했나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아마 돈을 많이 내고 더 좋은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완벽하게 나의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을 뿐이다. 손을 잡을 수 없고 안고 숨결을 느낄 수 없을 뿐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과 사만다(컴퓨터)가 서로 말로 대화하면서 성적인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이 어색했다. 인간과 기계 관계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가상현실이 더 발전한다면 이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내 몸이 직접 느끼는 것에 익숙하다. 그게 편하다. 맵고 짜고 달콤한 음식을 혀로, 밝고 어두움을 눈으로, 시끄러움과 고요함을 귀로, 춥고 더움을 몸으로 느낀다. 안으면 포근하고 따뜻함을 가슴으로 느낀다. 이 모든 느낌은 머리로 올라가 나를 이룬다. (‘안으면 포근해’라는 명대사는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 나온다.)     


그러나 가상현실이 더욱 발전하고 가상현실도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하나로 익숙해진다면, 만지지 않았어도 만졌다고 뇌가 인식한다면(뇌과학적으로 가능함) 굳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더라도, 우리 뇌에 ‘안지 않아도 포근하다’라고 입력된다면 헛것을 보고 헛것을 듣고 헛것을 만지며 행복해지는 세상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헛것이 위로해주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나와 같은 인간이 진짜라고 믿는 아날로그 인간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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