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Feb 12. 2023

시(詩)가 된 아버지의 부탁

-아버지 발톱을 깎으며/한상호 시집


       

몇 번이나/마른기침 하시더니/창밖 저쪽에다 눈길 주며/툭, 던지듯 하신 부탁//구십이 다 되어서야 하신/그리도 힘든 부탁//“발톱 좀 깎아주겠느냐” (아버지의 부탁/26쪽) 

    

아버지가 된 자식의 가슴에 새겨진 아버지의 부탁이 시가 되어 내게 왔다.   

   

한상호 시인에게서 시집 두 권이 왔다. 그중 한 권이 ‘아버지 발톱을 깎으며’이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던 시인은 내 글을 읽다가 아버지 생각이 났다는 글을 함께 보내주셨다. 나는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일하는 병원에 계신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철없는 자식들은 맛난 것 먹고 싶다고, 멋진 옷 입고 싶다고, 좋은 공부 하고 싶다고 아버지를 조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러한 자식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형편이 안 돼서 입으로는 거절할 때라도 마음은 거절 못 하고 애달파한다.     

 

그런 아버지가 자식에게 발톱을 깎아달라 부탁하신다. 밝은 눈도 자식에게 주고 날렵한 손끝도 자식에게 넘겨버린 아버지의 부탁이다. 아버지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몇 번이나 마른기침 하시더니 창밖 저쪽에다 눈길 주며 툭, 던지듯 하신 부탁’이 먹먹하다.      


세월 못 이겨 몸져누운 아버지는 한 잎 시든 풀잎 같다. 그 아버지의 몸을 훑어내는 고통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병원에서 준 진통패치이다. 효심이 깊은 아들은 진통패치 한 조각만도 못한 자식의 도리를 생각하며 시(詩)로 운다. (진통패치/35쪽)     


그러나 몸을 짓누르는 극심한 통증을 지켜보는 일은 힘들다. 하여 ‘이제 아기나비 되어 나폴 그 품으로 날아가’ 그만 고통에서 벗어나서 편해지시라고 한다. 그러다가도 ‘너무 아프지만 않다면 가지 마세요’라고 애를 끓인다. (나비-귀천/36쪽)     


가을과 겨울이 악수하며/생명을 주고 받더니/떨구어야 할 잎 더 떨군/흰 나비 한 마리/훌쩍 날아올랐습니다/산 사람 편히 살라고/기꺼웁게 날개치며/“나는 괜찮다” 날아갔습니다// –중략- 우리/나비로 다시 만날테니/“나는 괜찮다” 저만치 날아갔습니다// 묻혀 온 꽃가루/그대로 남겨 놓고는/“나는 괜찮다”/무심히도 날아갔습니다(나비-나는 괜찮다/46쪽)     


오랜 투병 끝에 아버지가 한 마리 나비처럼 떠나시자 시인은 아버지 대신 ‘괜찮다’는 말을 시로 전한다. 아마도 훗날 시인이 아버지와 같은 처지가 되어 자식들 마음을 졸이게 할 때 하고 싶은 말이리라.      


시집에 발간된 연도를 보니 2016년이다. 시인의 나이 환갑을 넘어서이다. 누군가의 아버지 나이인 시인은 가지 마시라고 어린아이처럼 아버지를 붙잡는다. 그러다가도 자식을 염려하는 아버지로 다시 돌아가 소리 내서 울지 않고 담담하게 시 몇 줄로 슬픔을 다독인다.    

  

나도 아이들의 어미이고 아직 늙은 어미가 살아계시니 시인의 마음이 저절로 내 마음이 된다. 한강 건너 혼자 계시는 어미를 생각하며 아들을 먹일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는 아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