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쉰아홉 살이다. 우리가 오래 사용한 관습의 나이로는 예순 살이다. 석 달 전 그녀는 내가 일하는 병원에 새로 들어왔다. 젊어서 잠깐 병원에서 근무했고 그 후로는 오래 보건소에서 일했다. 보건소를 그만두고는 가정 방문 간호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에게 병원 일은 낯설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처음 근무를 시작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녀는 의욕이 넘쳤다. 한 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고 먼저 나서서 일하려고 했다. 열이 나는 환자가 있으면 체온계를 들고 먼저 달려갔고 꼼꼼하게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몇십 명의 환자를 파악하고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한 가지 일을 배우고 돌아서면 새로운 일이 기다린다. 어느 때는 두세 가지의 일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다들 바쁘니 차근차근 가르쳐 달라고 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삼십 대 사십 대 젊은 사람들이다.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많고 눈이 빠르고 손도 빠르다. 의사와 같이 일하는 것도 능숙하고 보호자를 대하는 방법도 잘 안다.
쉰아홉 살의 그녀는 그렇지 못하다. 노안이 시작되어 컴퓨터 화면 가득 적힌 처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헷갈린다. 낯설다. 보호자들이 하는 말의 의도를 파악해서 원무과나 의사에게 전달해서 해결하는 일도 경험이 없으니 쉽지 않다.
하루아침에 완벽해질 수 없다. 늦게 시작한 그녀도 알고 젊은 그녀의 동료들도 그 사실을 알지만, 눈앞에 닥친 일들은 그녀의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대로 자기 자신이 답답하고 동료들은 동료들대로 답답하다.
며칠 전 오후 근무를 마치고 내게 인계를 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당황해서 더듬거리기도 한다. 처음 봤던 의욕에 넘치는 얼굴이 아니다.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이다. 인계를 끝내고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힘들죠?”
그녀는 대답 없이 웃는다. 눈자위가 붉어진다. 눈물이 그렁해진다. 나는 말을 계속한다.
“지금은 배우는 때니까 참고 배우는 수밖에 없어요. 이제 석 달 지났잖아요. 일 년 정도 지나면 잘할 수 있어요.”
“정말 일 년 지나면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선생님은 열심히 노력하시잖아요. 저는 그게 보여요.”
이런 말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석 달 동안 쌓였던 서러움이 무너지나 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서러움이 새어 나오지 않게.
“얼른 집에 가서 쉬세요. 조만간 만나서 밥 한번 먹어요. 제가 사드릴게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탈의실로 간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얼굴이 조금 밝아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