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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r 01. 2022

봄비가 걸어온다


투...투...투둑

무엇이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소리

박자 길이로 두드리고 세 박자 쉬는 소리

'두'라는 글자에 기역 받침이

물방울처럼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타...타...타닥

무엇인가가 무엇 위를 디디는 소리

빗방울이 나뭇가지에 발자국을 남기는 소리

조심스럽게 한 걸음 또 한걸음

새순 다치지않게 걸어가는 소리,

들린다


봄비가 걸어온다



눈도 감기고 귀도 감겨있는 새벽이다. 하늘도 아직 어둠을 이불처럼 감고 졸고 있다. 이 새벽을 무언가가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이라든가 ''이라든가 하는 소릿말 하나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소리다. 하지만 분명한 소리다. 빗소리다.


두꺼운 베란다 유리문을 뚫고 내 방 창문을 뚫고 잠든 고막을 뚫고 들려오는 여린 소리에 눈이 떠진다. 몸이 떠진다. 부스스 일어나 창을 연다. 소리가 좀 더 선명해진다. 소리의 받침이 완성되어 분명하게 귀를 두드린다. 뇌를 두드린다. 투투툭타타탁 툭탁.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온다. 창 밖이 희뿌연 하다.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그 앞에 몸을 접어 쪼그리고 앉는다. 젖어 검어진 나뭇가지가 보인다. 젖어 붉어진 흙이 보인다. 며칠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나 너무 작아 보이지 않던, 새순들이 젖어 생생해진 초록으로 보인다.


나무 몇 그루 없는 빤하게 좁은 마당 제법 여러 종류의 싹과 순이 눈에 띈다. 아직 손톱  하나보다 작지만 돌나물 싹이 보인다. 나비 날개보다 작지만 매발톱  싹도 보인다. 돌나물 싹과 매발톱 싹 사이에 뾰족뽀족한 저것은 산부추다. 아직도 마른 꽃을 떨구지 못한 수국 가지에 돋은 붉은 새순도 보인다.


다시 나무에게 눈길이 간다. 어느 가지에는 꽃눈이 돋아있고, 어느 가지에는 잎눈이 돋아있고, 어느 가지에는 물방울이 돋아있다. 동글동글한 저것들을 연결하면 봄이라는 별자리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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