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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24. 2022

전쟁, 사람이 없다

큰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동화책을 읽고 쓴 독후감에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책 주인공의 집에 불이 난 장면을 읽고 쓴 한 줄이었다. 그때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열 살 아이는 허구의 동화 속의 이야기를 현실에 일어난 일처럼 받아들여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그렇게 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 딸아이는 이제 자신의 무탈에만 안도하지 않는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깊게 느끼게 된다.

결국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졌다. 도시가 불타는 장면을 보았다. 미사일이 떨어지고 순식간에 붉은 화염이 치솟아 오른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는다. 영상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저 도시에, 저 건물에, 저 거리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들고 무섭다. 만약 내가 사는 곳에서 저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뉴스에 수많은 사람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도로는 차량으로 꽉 막혀있다. 이것은 여름휴가 행렬이 아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서 탈출하는 모습이다. 살고 싶은 안간힘이다. 뉴스에는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도 나왔다고 간단히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사람이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고 듣는다. 전쟁이 아니었으면 어제처럼 오늘을 살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다는 것은 참혹하다.


“우리를 누가 받아줄까요? 어디서 살죠? 전 여기서 태어났고 아이들도 여기서 태어났어요.” 방송국 카메라에 잡힌 나이가 지긋한 여성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아이들과 여성들이 폭격을 피해 난민 텐트로 옮겨가는 장면이 나온다. 5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생길 것이라 한다. 작년 우크라이나 총인구수가 4천300만 정도라고 한다. 아홉 명 중 한 명이 난민이 된다는 말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가 아는 사람들 이름을 손가락으로 꼽아본다. 엄마와 언니들과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조카와 내 아이들 이름 만으로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친구들 이름까지 헤아려보면 손가락을 몇 번씩 접었다 폈다 해야 할 판이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몇 명이 순식간에 난민이 된다니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지만, 눈앞이 아득해진다.


아직도 휴전 중인 작은 나라의 작은 도시에 사는 나는 전쟁의 대의명분보다 전쟁으로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을 사람들이 먼저 걱정된다. 다치고 피 흘릴 사람들이 걱정된다. 부모를 잃고 굶주림과 추위 속에 울 아이들이 걱정된다.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사진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사진이다. 그때 내 엄마는 열다섯 살이었다. 사진 속 여자 아이는 열다섯 살보다 어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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