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Mar 29. 2022

제라늄 붉은 꽃



붉은 꽃이 피었다. 손을 대면 손가락 끝에 핏방울이 맺힐 것 같았다. 톡 건들면 꽃잎이 방울방울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는 꽃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밥을 안치면서 꽃을 향한 그의 시선을 보았다. 화분은 몇 년째 집에 함께 살고 있다. 매해 이맘때면 꽃을 피웠다. 나는 동그랗고 도톰한 이파리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꽃대를 발견할 때부터 맑게 붉은 꽃을 떠올리며 설레곤 했었다.



몇 년 동안 꽃을 스쳐 지나가던 그가 오늘 꽃을 발견했다. 지금 그는 꽃이 주는 붉고 아름다운 세계에 들어가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찍었다. 그가 생각하는 꽃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찍힐 때까지 찍었다.



그는 꽃이 예쁘다고 말했다. 나는 찌개가 끓는 소리와 함께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꽃의 이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첫 꽃이 피었을 때 그에게 꽃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그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꽃의 이름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다음 해에 꽃이 피었을 때 나는 그에게 꽃의 이름을 다시 알려줬다. 그러나 그때도 그의 귀는 열려 있지 않았다.



그가 꽃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찌개 끓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꽃 이름을 검색하고 있다. ‘제라늄이네. 제라늄 맞지?’ 그가 내게 한 말은 채소를 씻는 물소리에 섞여 버렸다. 나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



그는 밥을 먹으면서 꽃을 보았다. ‘정말 이쁘다.’ 아이들은 계란찜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신김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를 퍼서 먹으면서, 그는 자신이 찍은 꽃 사진을 보았다. ‘어쩜 색이 이렇게 곱지?’ 나는 아이들에게 계란찜을 덜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붉은 꽃이 시들었다. 그는 꽃이 시든 것을 모른다. 나는 꽃과 이파리가 시드는 것을 보았다. 가끔 물을 주고 시든 잎을 따 주었지만, 차츰 누렇게 변했다. 마지막 남은 잎이 완전히 시들었다. 나는 화분을 버렸다. 나는 아이들의 사진을 챙겨 이사했다. 그는 제라늄 붉은 꽃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을 가지고 떠났다. 3년 전이다.



작가의 이전글 봄비가 걸어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