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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an 25. 2022

종이 인형

나를 그리기

"속상해서 엉엉 울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게 속상할 일이구나. 울 일이구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집 앞 골목에서 주차를 하다가 조수석 사이드미러가 긁혔단다. 그래서 속상해서 엉엉 울었단다. 나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속상하지 않았고 울지 않았다. 그저 내 차 사이드미러 하나만 망가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차를 스친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에 주차장에서 자동차 앞 바퀴가 찢어진 것을 발견하고 교체를 했을 때도 주행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몇 십 만원의 돈이 사라진 것이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일찍 발견해서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이 다행한 일이지만 갑자기 돈을 쓰게 된 일은 분명 아까운 일이다. 속상해야 한다. 그런데 나의 감정은 다행에서 멈춘다.      


어떤 불행이 생기면 그 불행이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한탄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랬다. 좋게 생각하면 긍정적이다. 그런데 좀 바꿔보고 싶다. 실망하지 않으려고 쉽게 긍정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 뒤에 찾아오는 슬픔이나 우울과 같은 감정들을 마주하기 어려워서 나는 괜찮다 긍정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체념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나를 다시 만들어 보고 싶다.


어릴 때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두꺼운 종이에 속옷 차림의 인형과 그 인형에게 입힐 수 있는 여러 가지 옷들이 인쇄되어 있다. 가위로 오린 후 인형에게 옷을 갈아 입히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내가 그린 새 옷을 만들어 입히기도 했다. 하얀 도화지에 인형을 대고 몸체대로 본을 뜬 후 내가 생각한 대로 옷모양을 그렸다. 내 마음에 드는 색의 색연필로 색칠도 했다. 이런 저런 장식도 그려주었다.      


나를 도화지에 대고 옷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내게 갑자기 툭 떨어진 불행들에 대해 이 정도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옷을 벗어버리고 내 것이었던 행복이 망가져서 속상하다고 울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싶다. 울어야할 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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