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터 샷’이 뭐 별 거인가?

우먼타임스 2022.01.17

by 최희정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처럼 올겨울도 사람들은 진력이 나도록 집에 갇혀있다. 어쩌다 만나면 “부스터 샷은 맞았나요” 묻는 게 인사말 중 하나가 되었다.



해가 바뀐 지 꽤 되었지만, 머릿속은 아직도 2021년과 2022년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날짜도 헷갈린다. 그러다가 문득 1월이 반도 더 지난 것을 깨닫고 한 일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해졌다.



게다가 날씨는 섭씨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한파가 계속되어 길에 나서면 바람도 날이 서있어 매섭다. 찬 공기가 가득한 바람이 퍽 주먹을 날린다. 고개가 자꾸 숙어진다. 허리도 꼬부라지고 발걸음도 종종거려진다. 가지 끝에 매달려 비쩍 말라 흔들리다 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처럼 온몸이 저절로 웅크려진다. 몸이 휘청거리니 마음은 더욱 허허롭다. 이러다가는 몸도 마음도 도르래를 놓친 두레박처럼 우물 아래로 처박히기 쉽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집에 오던 발걸음을 돌려 장을 보러 갔다. 굴과 달래를 사고 톳과 두부를 샀다. 집에 와 쌀을 씻어 톳을 얹어 밥을 한다. 밥이 끓자 바다 내음이 올라온다. 바닷가의 찝찔한 바람 냄새다.



저기 남쪽 끝 섬에서 톳 농사를 짓는 친구가 생각난다. 친구도 겨울 찬 바다에서 톳을 건져 올리겠지. 톳을 자주 먹어야겠다. 다음에는 톳을 더 많이 사서 톳 무침도 해 먹어야지. 굴은 소금물에 살살 씻는다. 생굴도 맛있지만, 요즘은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있어 날로 먹을 수가 없다. 달큰 짭조름한 그 맛이 떠올라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두부와 무도 굴 크기로 납작하고 네모나게 썰어 넣고 굴국을 끓인다. 무가 투명하게 익고 두부가 끓어오르면 굴을 넣는다. 파와 다진 마을을 넣고 굴이 탱글탱글하게 익으면 불을 끈다. 굴은 너무 익으면 맛이 없다. 고실한 톳 밥에 참기름을 섞은 달래 양념장을 얹어 비벼 한 입을 먹고, 뽀얀 국물이 시원한 굴국을 한 입 먹는다. 시원한 동치미와 알싸하게 익은 김장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진다. 얼얼했던 몸이 녹고 쪼그라들었던 마음도 펴진다. 든든하게 먹은 밥 한 끼가 ‘부스터 샷’이다.



두둑하게 배를 채우고도 밤은 길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봐도 아직 잠자리에 들기엔 이른 시간이다. 이럴 때는 버스 정류장 근처 포장마차의 노란 불빛 아래에서 한 개씩 들고 호호 불어가며 먹었지만, 요즘은 마스크를 벗고 먹기 부담스러웠던 어묵탕을 만들어 본다. 무를 달처럼 둥글고 두툼하게 썰어 넣고 시원하고 달큼한 국물을 만든다. 남쪽 바다에서 검고 윤이 나게 자란 다시마도 크게 한쪽 잘라 넣으면 국물이 더 맛있다. 여기에 얇고 넓적한 어묵을 접어 꿴 꼬치와 가래떡처럼 길고 둥그런 어묵을 꿴 꼬치를 같이 넣고 끓인다.



어묵 특유의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해지면 식구들이 다시 식탁으로 모인다. 적당히 끓여져 부드러워진 어묵을 건져 먹느라 하하 웃을 때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신이 난다.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에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즐겁다. 약 올리듯 휭휭 불어대던 찬바람도 창문에 코를 박고 입맛을 찹찹 다신다.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가 계속되지만, 뱃속이 뜨뜻해지니 까짓 맹추위가 겁나지 않는다.



사흘만 지나면 24절기의 마지막 ‘대한’이다. ‘대한’ 지나고 보름만 있으면 ‘입춘’이다. 이제 추위가 누그러질 것이다. 꽃처럼 이쁜 봄동을 사다 무쳐야겠다. 된장을 심심하게 풀어 냉잇국도 끓여야겠다. 어깨를 불끈 세워 다시 봄을 맞아야겠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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