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2021.12.17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을 노랗게 물들이던 은행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 빈 가지로 서 있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가지마다 동글동글한 것을 달고 있다. 겨울눈이다.
겨울눈은 나무가 이듬해 봄을 위해 만든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이기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몸,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무의 겨울눈인 잎눈과 꽃눈은 잎과 꽃의 압축된 정보와 영양을 모아둔 것이다. 나무는 이 겨울눈을 추위로부터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다. 목련은 겨울눈의 껍질에 털외투를 입히고 히어리는 껍질 안쪽에 털을 키운다. 해송은 송진으로 추위와 바람이 들어올 틈을 막는다.
잔가지나 굵은 가지나 빈틈없이 눈을 달고 있다. 은행나무뿐 아니라 산수유도 목련도 다 한가득 달고 있다. 이른 봄에 노랗게 좁쌀 같은 꽃을 피우는 산수유는 작은 콩알처럼 동그란 꽃눈이 달린 것이 보인다. 목련의 꽃눈은 꽃피기 전 꽃봉오리와 닮았다. 그래서 간혹 겨울에 목련꽃이 피려고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꽃눈을 추위에 얼지 않도록 겨우내 잘 지켜야만 봄에 커다란 꽃을 만들 수 있다. 작고 어린나무들도 예외 없이 가을에 미리 다음 해 봄을 준비해 놓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름부터 준비한다. 나무는 사람보다 철저하다. 이 철저한 준비에 감탄하면서 나무를 본다.
사람들도 나무처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있다. 봄이 오면 모를 쪄서 모내기를 준비하는 것이 그렇고 늦가을이 되면 무와 배추를 거두어 김장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사람살이는 나무의 삶과 달리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벌써 2년 가까이 전 세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도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미리 준비할 수가 없었다. 초기에는 많은 사람이 앓거나 생명을 잃었다. 큰 비용과 시간을 지불한 후에 겨우 가라앉는가 싶더니 오미크론이라는 다른 변종이 나타나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최근 들어 확진자 숫자도 쑥 늘어났다. 결국 다시 코로나19 방역수칙이 강화되었다. 뉴스가 어수선하다. 이 겨울을 어찌 지내나 근심스럽다.
지난해 가을과 겨울이 떠오른다. 갑자기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카페나 식당의 영업시간이 줄어들고 거리는 삭막해졌다. 나는 특히 병원에서 일하는지라 더욱 조심하느라 외출을 안 하고 대부분 집에서 보내다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PCR 검사를 해야 했고 집 밖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지금도 마스크를 쓰고 PCR 검사는 계속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답답하고 막막하다.
다시 나무의 겨울눈을 생각해 본다. 나무를 자세히 보면 눈이 달린 곳은 마디의 끝이다.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비록 변종이 나타나 어수선하지만 백신 접종을 70% 이상 완료한 지금은 한 뼘의 마디가 자란 때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입되었을 때랑 다르다. 불현듯 윤동주의 시가 생각난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밤이 어두웠는데/눈 감고 가거라//가진 바 씨앗을/뿌리면서 가거라//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눈감고 가거라’ 전문)
태양을 사모하고 별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가다가 발부리에 돌이 차여도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춥고 캄캄한 밤길을 계속 가는 심정이지만 한해의 마디가 끝나는 12월, 겨울눈을 잘 지켜내서 봄을 맞이하고 싶다. 그렇게 서로서로 잡고 걸어가서 새봄이 오면 눈을 와짝 뜨고 나뭇가지에서 겨울눈이 벌어져 꽃이 피고 잎이 돋는 것을 보고 싶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