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대접

우먼타임스 2022.01.31

by 최희정

지난 근무표를 뒤져보니 작년 설과 재작년 설 두 번 다 근무였다. 이번 설에도 근무다. 3교대 근무를 하는 병원 간호사는 여느 직장인들과 달리 주말에 쉬기가 어렵다. 공휴일도 쉴 수 없다. 그러니 명절은 더욱 챙겨서 쉬기가 어렵다. 특히 근무자가 많지 않은 병원은 나만 명절 근무를 빼 달라고 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나 대신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에는 코로나가 아주 심했다. 혹시나 아직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시골까지 번질까 싶어 사람들이 고향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 병원에서 환자들을 상대하는 간호사인 나는 설 연휴에 이틀을 출근하고 나머지 날들도 집에 콕 박혀 있었다. 혹시나 해 명절에 남동생 식구가 다녀간 엄마에게도 가지 않았다. 특별한 음식을 하면 와서 먹으라던 언니네 집에도 가지 않았다. 딸도 집에 오지 못했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지냈다. 명절 음식도 굳이 하지 않았다.



1년에 한두 번쯤 만나는 지인이 있다. 아들의 친구 엄마다. 아들이 아주 어릴 때 다니던 동네 어린이집 친구로 시작해서 이십 년 가까이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분한테서 설이 지나고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자는 연락이 왔다. 반가워하며 어디서 만날지 묻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교육공무원인 그분도 밖에서 만나는 것이 꺼려지나 보다 생각했다.



과일을 사 들고 알려준 주소대로 찾아갔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 나왔다. 상에는 몇 가지나물과 잡채와 불고기 등이 차려져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서는 무언가가 끓고 있었고 프라이팬에서는 전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시절이 이래서 명절을 쇠지 못하셨을 것 같아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했어요. 엊그제가 설이라 아직 명절 음식이 있거든요.”



그분도 명절 준비를 하는 며느리라 바쁘고 고단했을 텐데 나 한 사람을 불러 먹이자고 차린 상 앞에서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맑은 표정으로 이것저것 음식을 권하며 먹어보라는 친절함에 며칠간 야근의 피로가 사르르 풀어졌다. 그이의 다정한 대접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시 설이 돌아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는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확진자가 2만 명에 육박했다.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지난주부터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오면 출근을 하라고 한다. 이런 지경이니 올해도 명절에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특별한 음식을 차려주고 먹으라고 권해야 할 시절인데 밥상을 펼칠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람들한테 떡국을 끓여주는 대신에 올해는 떡국 식사 꾸러미(밀 키트)를 제공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중소기업 관련 단체에서는 설 명절을 맞아 전국 복지시설 300곳에 4만 명의 떡만둣국 꾸러미를 외부활동에 제약이 많은 보육원, 노인 생활시설, 장애인 자활꿈터 등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거리가 곧 집인 사람들의 어깨에 붙은 간밤의 찬 서리를 녹여주기 위해서는, 지금 끓고 있는 뜨거운 음식이 필요하다. 그들이 펼쳐진 휘장 아래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먹어도 괜찮고 편안한 시절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매거진의 이전글‘부스터 샷’이 뭐 별 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