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에서 초록으로

우먼타임스 2022.03.15

by 최희정

사람이 숫자로 치환되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나는 숫자가 아니다. 동료 중에 ‘송’과 ‘박’이 먼저 숫자가 되었다. 그다음은 ‘우’였고 ‘김’이다. 오늘은 드디어 ‘황’이 숫자로 변했다. 그들은 원칙에 따라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을 대신할 인력은 없다. 하루아침에 사람을 구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남은 사람들이 두 사람 세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한다.



하나의 팔과 하나의 다리만 있는 모습이다. 남은 팔의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우고 걷는 것 같다. 걷기도 힘든데 현실은 뛰어야 한다. 울퉁불퉁 돌이 튀어나온 길을 뛴다. 길에 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굽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얼마나 돌이 많아질지 언제 굽이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길을 돌을 피해 굽이에 맞춰 달리느라 숨이 차다.



내일은 나도 숫자가 될 수 있다. 솔직히 너무 힘드니까 차라리 빨리 숫자가 되고 싶기도 하다. 내가 숫자가 되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 두렵다. 나 대신 동료가 사흘 혹은 나흘 연속 근무를 하게 될까 봐 미리 걱정된다. 숫자의 가속도가 무섭다.



강 건너 홀로 지내시는 팔순의 엄마가 아직 숫자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심장병이 있어 백신을 맞지 못한 엄마가 앞으로도 계속 이 역병을 잘 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외출이 잦은 이십 대 초반의 아들이 숫자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집에 살면서 같이 밥 먹는 것이 꺼려진다. 이러는 나를 너무 유별나게 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업상 어쩔 수가 없다.



이 와중에 남쪽에서는 꽃소식이 올라온다. 내 형편은 이런데 꽃은 피었다. 봄이면 꽃이 피는 것이 당연한데 괜히 심술이 솟는다. 한편으로는 우리 동네는 아직도 날이 쌀쌀하고 꽃봉오리조차 보이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이 불룩거린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불편하니 괜히 봄에게 트집을 잡게 된다.



일터에서는 방호복을 입고 그 위에 일회용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숨이 턱턱 막히는 N95 마스크를 쓰고 투명한 얼굴 보호대를 쓰고 일한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땀으로 몸이 축축해진다. 새벽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병실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 보니 갈증이 난다. 일이 많아 밤을 꼬박 새웠더니 배도 고프다. 처치실 구석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귤 하나를 까서 먹는다. 멀리서 내 모습을 보고 간병사 한 분이 오신다. 5미터는 넘게 떨어진 자리에서 내게 말한다. 내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마스크를 낀 채 크게 소리친다.



“새벽부터 빈속에 그런 거 먹으면 속 쓰려요. 내가 과자라도 좀 줄까요?”



나는 코 밑에 고인 땀을 닦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웃으며 답하는데 울컥 귤즙이 목에 걸린다. ‘과자라도 줄까요’라는 나를 걱정해주는 한 마디에 긴장으로 딱딱하던 마음이 봄볕으로 보드라워진 흙처럼 녹는다. 봄날 흙 틈에서 겨우내 추위를 견딘 씨앗의 작고 여린 순을 본 것처럼 기쁘다. 떡잎이 자라고 줄기가 자라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분명 자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우리들의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숫자로 변했던 사람들이 다시 건강하게 사람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지금은 싹이 돋았다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작은 것이지만 또렷하게 보인다. 분명한 연두색이 있다. 색이 아니라 빛이다. 아직 동트기 전 일터의 검은 하늘에서 발견한 연두의 별빛이다. 3월이 지나면 연두의 위로는 초록의 평안으로 무성해질 것이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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