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2022.02.14
야근을 끝내고 퇴근한 아침,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점심때다. 지난밤은 일이 많아 피곤했다. 이런 날은 달콤하고 매콤하고 뜯고 씹을 수 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 치킨이 생각난다. 치킨을 시켜볼까 하는 마음으로 배달 앱을 열어 본다. 아이고 메뉴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이냐. 어느 집이 맛있더라?
혼자서 치킨을 시켜 먹어 본 지가 오래전이라 어떤 것이 맛있는지 모르겠다. 메뉴가 수십 가지다. ‘크림소스’나 ‘치즈’라는 단어가 붙은 이탈리아 파스타 이름과 비슷한 것도 있고, 중국의 소스인 ‘마라’라는 명칭이 붙은 메뉴도 있고, 매운맛을 더욱 강조하는 ‘불’ 자가 붙은 치킨도 있다. 한국식으로 간장 양념에 버무렸다는 닭튀김도 있다.
다 처음 보는 메뉴다. 심지어 파채나 말린 마늘 조각을 얹어주는 것도 있다. 세상에나, 치킨의 이름이 이렇게 우주의 별자리처럼 다양하다니!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설명을 읽는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보다 더 열심히 읽는다. 후기도 정성껏 읽는다. 사진을 보고 설명을 읽고도 선뜻 주문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튀긴 닭 한 마리를 주문하려다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결국 주문을 포기하고 냉장고를 뒤져 어제 먹던 반찬과 밥 한 공기로 점심을 때운다.
작년이었던가, 작은 언니네 식구들이 엄마 집에 다니러 왔다. 엄마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가 반가워 근처 시장의 닭강정을 사주고 싶었단다. 가서 사 오라고 하자, 언니가 자기네 동네에 더 맛있는 집이 있으니 나중에 집에 가서 주문해서 사 먹겠다고 했단다.
“그 집이 맛이 괜찮거든. 시장이 코 앞인데 가서 그걸 사 오면, 애도 먹이고 그 김에 나도 몇 개 먹고 그러면 좋잖아.”
이렇게 말씀하시던 엄마의 눈가가 빨개지더니 말씀을 멈추신다. 울컥하는 표정이다. 팔순의 엄마는 그러는 자신이 민망한지 눈가를 닦으며 피식 웃는다. 기름진 음식을 즐겨 드시지 않지만, 엄마는 그때 기름에 튀겨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닭강정이 먹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걷는 엄마가 혼자 시장까지 가서 그 음식을 사 오는 것은 무리다. 그러니 손주 본 김에 사다가 손주도 먹이고 엄마도 먹고 싶었나 보다.
언니는 그런 엄마의 속마음을 모르고 손주를 먹이려는 마음에 엄마가 돈을 쓸까 봐 사양한 것 같다. 정정하던 시절이었다면 손주가 온다는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가 시장까지 걸어가서 닭강정을 사다 놓았을 거다. 엄마는 섭섭함으로 목이 메었을까. 운신이 편치 않은 당신의 처지가 서러웠을까.
저녁에 들어온 아들한테 낮에 치킨을 시켜 먹으려다가 메뉴가 너무 많아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몰라서 주문을 못 했다는 얘기를 했다. 아들이 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기 유리 화면을 몇 번 톡톡 두드린다. 20분 뒤에 치킨 배달이 왔다. 간장 맛이 나는 짭조름하고 달콤한 치킨이다. 같이 시켜준 떡 튀김도 맛있다. 요즘 가장 맛있는 곳으로 알려진 집으로 주문을 했단다.
오십 대인 나는 다리도 성하고 돈도 있지만, 정보가 부족해서 먹고 싶은 닭을 주문하려다 포기했다. 팔십 대인 엄마는 돈은 있지만, 걷기가 힘들어 먹고 싶은 닭강정을 못 먹었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얻는 이십 대 아들은, 손가락 하나로 제 입맛에 맞는 최신 유행의 메뉴를 순식간에 시켰다.
조만간 아들을 데리고 엄마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맛있는 닭강정을 시켜 드려야겠다. 아니 아들 ‘다리‘를 시켜 시장에 가서 사 오라고 해야겠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