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2022.04.06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옆집은 '이상한 이웃'이었다. 우리 집 작은 방 창문을 열면 복도를 통해 그 집 현관문이 보였다. 그 이웃은 자기 집 현관 번호키 비밀번호가 노출될 수 있으니 창문을 열지 말라고 요구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조였다.
우리 가족을 예비 범죄인 취급하는 그녀의 무례한 태도가 기분이 나빴다. 언젠가는 현관문 밖에 음식물 쓰레기가 담겨있는 비닐봉지를 내놓기도 했다. 나는 그 이웃을 몰상식하고 심술궂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몰래 눈을 흘겼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아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다가 우연히 그녀를 보았다. 네다섯 살 정도의 작은 사내아이 손을 잡고 뛰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등에는 노란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아마도 손자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 같았다. 그 후로도 가끔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느 날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리고 앉아 얼굴에 묻은 것을 닦아주기도 했다. 저녁 무렵에 아이를 업고 오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잠이 깊게 든 아이의 고개가 옆으로 떨어질 때마다 엉거주춤 구부린 등을 추슬렀다. 아이의 엉덩이를 받치느라 등 뒤로 돌려 잡은 손에는 아이가 먹을 간식거리가 들어있는 봉지와 가방이 들려있었다.
아이를 바라볼 때 그녀의 얼굴은 항상 웃고 있었다. 이웃인 내게 보여주던 심술궂은 표정은 전혀 없었다. 어린 손자를 사랑하는 다정한 할머니였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딸을 대신해서 손자를 보살피느라 애를 쓰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어릴 때 도화지에 여러 가지 색의 크레파스를 칠하고 그 위를 검정 크레파스로 덧칠을 한 후에 칼이나 뾰족한 철필로 검은색을 긁어내는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있다. 검은색이 벗겨진 부분에는 알록달록 색이 섞인 꽃이 피어났다. 반원으로 둥글고 길게 벗겨내면 무지개도 나타났다. 검정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사람들도 예뻤다.
내게는 심술맞지만 어린 손자에게는 애틋한 그녀를 보면서 검은색을 걷어내는 그림그리기가 떠올랐다. 완전히 나쁜 사람은 없다. 사랑이 없는 사람도 없다. 나쁜 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 목덜미에 썰렁하고 축축한 기운이 파고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타려는 순간, 아이를 업고 한 손에는 커다란 우산을 들고 쩔쩔매면서 종종걸음으로 뛰듯이 걸어오는 그녀가 보였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한 손은 아이를 받치고 가방을 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와 함께 따뜻한 집에 들어갈 수 있게 기다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먼저 탄 중년 남성이 얼른 타라는 눈짓을 했다. 그는 내가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눌러버렸다. 아이를 업은 채 비가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접고 냉기가 가득한 1층에서 서성거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17층에서 내리면서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조금이나마 빨리 탈 수 있도록. 내가 한 행동을 나의 이상한 이웃이 몰라도 상관없다. 조금 덜 추우면 된 거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