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2022.04.22
날이 따뜻해지면서 주말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이 늘었는지 차가 밀린다. 신호가 바뀌어도 차가 몇 대 빠지지 못하고 슬슬 구르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무료함을 달래려 라디오를 켰다. 클라리넷 연주곡이 흐른다.
음악이 끝나자 진행자가 연주자에게 연습은 얼마나 하는지 물었다. 그는 하루 세 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생각보다 연습량이 적다고 놀라는 진행자에게 연습을 오래 하면 입술이 퉁퉁 붓고 쓰라려 오래 연습할 수 없다고 설명해준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는 마우스피스의 리드 부분이 아랫입술을 눌러 아랫니가 입술 안쪽을 자극하여 통증이 생기기 때문에 오랜 시간 연습하면 오히려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찾아보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오디션을 앞두고 4일간 클라리넷을 불지 않은 적도 있고, 입술의 상태가 좋아 그 덕에 오히려 결과가 좋았다는 이 연주자의 기사도 있었다.
클라리넷 연주자뿐 아니라 관악기 연주자에게 최악의 계절은 겨울이라고 한다. 찬바람에 트거나 건조해 갈라진 입술은 연주에 치명적이라서 연주자들은 수시로 보습제나 꿀을 발라 입술을 보호한다. 기량을 늘리기 위해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고 연주를 잘하기 위한 입술, 즉 몸의 기본 상태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봄에는 기력이 없고 피곤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올봄에는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들의 호소가 많다. 확진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나 열이나 기침 등 잘 알려진 증상이 사라지고도 몸이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아서 앓기 전보다 쉽게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흔하다.
나는 코로나를 앓지 않았지만 요즘 피곤과 무기력함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3월 병원에 확진자들이 속출하면서 일이 많이 늘었다. 나와 교대로 근무하는 동료가 확진이 되면서 그가 근무하는 날까지 내가 출근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몸이 피곤하니 입맛도 없어 어느 날은 하루 한 끼만 먹는 날도 있었다. 혹시나 외출했다가 나도 확진이 될까 봐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외식도 자제했다. 작년에 비해 날씨도 따뜻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집에서 웅크리고 지내는 날이 많다 보니 몸은 더 늘어지고 의욕이 없다.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집안 대청소도 해야 하고 미장원도 가야 한다. 치과도 가야 하고 엄마 생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언니네 김치통도 돌려줘야 한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한나절 시간을 내서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고,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보고 싶고, 피곤하다고 밀쳐두었던 책도 보고 싶다.
하지만 갑자기 벌떡 일어나 ‘해야 할 일’에 덤볐다가 체력이 더 떨어질까 봐 망설여진다. 섣불리 의욕을 보였다가 ‘하고 싶은 일’은 손도 못 대면 낭패다. 급한 마음을 달래며 조금씩 살살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오늘 멈춰서 쉬는 것이 내일의 큰 걸음이 될 수도 있으니까.
신호등이 붉은색이다. 내가 아무리 빨리 가고 싶어도 멈추어 기다려야 한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던 중 붉은 신호가 푸른 신호로 바뀌고 앞 차가 움직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붉은 신호로 바뀐다. 나는 다시 멈춘다. 기다린다. 어쩌겠는가. 기다려야지. 라디오에서 다음 연주곡이 흐른다. 기다리는 마음에 음악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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