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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pr 06. 2022

봄이 또 왔다

봄날의 속초

봄이 또 왔다     

재작년 오늘 세 여자는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야근을 마친 나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눈부신 봄볕을 보다가 까무룩 졸다가 하면서 속초까지 갔다. 볼거리가 많은 속초시장을 구경하고 어느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밥을 먹고 우리는 차를 신나게 몰아 바닷가로 갔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까불고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리는 이상한 자세로 사진을 찍으며 깔깔거렸다.      


지난겨울 세 여자는 모두 자기만의 슬픔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 여자는 애인에게 갑자기 찾아온 큰 병으로 그녀 특유의 명랑함을 놓쳤다. 우리는 서로 변죽이 잘 맞아 실없는 농담으로도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사이였는데 지난가을부터는 웃으면서도 자꾸 눈 밑이 젖어드는 것을 어떤 농담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또 한 여자는 자식의 일로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큰 슬픔에 놓여있었다. 일분일초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내는 그녀를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가 없었다. 벼랑 끝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자식을 지키려 애쓰는 그녀에게 전화하는 것도 어려웠다. 위로랍시고 던진 한마디 말이 오히려 참고 있는 눈물을 터뜨리는 뾰족한 바늘이 될까 봐 두려웠다.     


나에게도 예상치 못한 상실이 찾아왔다. 지난 2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친구들의 깊은 슬픔을 이미 알아서 나도 힘든 일이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달 넘게 혼자서 오롯이 견뎌야 했다. 게다가 무서운 속도로 불안하게 번지는 오미크론으로 일이 너무 많아져 몸과 마음의 피로가 겹겹이 쌓여갔다. 긴 겨울 동안 우리는 밤의 섬처럼 각자의 슬픔을 각자의 찬 물결로 쓰다듬으며 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찬란해지는 때가 있다. 재작년의 오늘이 그렇다. 돌아오는 길에 들린 춘천의 식당 옆에 우람한 벚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름드리 큰 나무에 밤 벚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내년에 또 오자 우리는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작년 봄 우리는 다시 속초에 가지 못했다. 한 여자는 카페를 하루 닫을 짬을 낼 수가 없었다. 또 한 여자는 연애에 달떠 친구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나대로 하루하루 벌어먹고사느라 바빴다.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여행의 날짜를 맞추는 것이 어려워 봄을 그냥 보냈다.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못하고 겨울을 보낸 지금 이런 약속이 별일 없이 지켜지는 삶이란 얼마나 조용하고 편안한 삶인지 되새겨 보게 된다.     

 

올해는 이제 막 당도한 도시의 봄이 세 여자에게 친절했으면 좋겠다. 하여, 셋 중 누군가의 “우리 지금 만나”라는 짧은 한 마디에 군말 없이 모일 여유가 생기기를. 만나서 그 봄의 낮과 밤을 떠올리며 같이 앉아 꽃 같은 밥을 먹을 수 있기를. 그때의 파도 소리가 오늘의 봄바람에 섞여 있다는 허풍스러운 농담을 나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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