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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pr 02. 2022

마음이란 게 참, 어느 때는




동짓달 빈 가지에서 꽃이 보일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꽃이 환하고 따뜻해서 곁불 쬐듯 곱은 마음을 녹이게 되는 때가 있다. 활짝 핀 꽃가지가 빈 가지로 보일 때도 있다. 꽃을 들고 실없이 내 어깨를 건드리는 가지에 심술이 나서 못 본 척하는 때가 있다.


먹구름 컴컴 천둥 우르릉 울렁 젖어도  마음, 제 혼자서 꽃놀이 가기도 한다. 달 없는 그믐 밤 달을  빚어 그 달빛 아래서 춤을 추기도 한다. 솜구름 퐁퐁 햇살 까르르 깔깔 맑아도  마음, 제 혼자서 굴파고 숨기도 한다.  귀 막고 눈 가리고 컴컴 답답 무섭다고 웅크려 울기도 한다. 


일체유심조 일체유심조


마음이 천 개의 탑을 쌓았다가 허문다. 마음이 천 번의 탑돌이를 한다. 마음이 등불 심지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한다. 마음이 마음을 쌈 싸 먹는다.


에라 상추쌈이나 먹자. 찬물 콸콸 틀어 얄팍한 상춧잎 주름 사이 안 보이는 흙 씻어내고 뚝뚝 흐르는 물기 촥촥 털어내고 손바닥 위에 손바닥처럼 놓고 손과 잎을 모아 합장을 한 후 밥 한 술 쌈장 한 점 얹어서 찢어지지 않게 살살 오므려 눈 질끔 감고 아아 입 크게 벌려 밀어 넣고 우걱우걱 씹어 꿀꺽 삼켜보자. 


쌈이 쌈을 부르지. 다섯 쌈쯤 먹다 보면 마음을 이긴 손이 저절로 여섯 번째 쌈을 잡고 있지. 열 쌈이 넘어가면 배도 부르고 노곤해지지. 서러움을 얹어 마지막 쌈을 꿀꺽 삼키고 나면 실실 눈이 감기지. 피곤도 슬슬 녹는다.


한낮 햇살을 덮고 잠시 쉰다. 깜박 든 잠이 달다. 눈을 뜨고 서러움과 고단함이 옅어진다.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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