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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r 20. 2022

지금은 깃대를 꽂을 때, 흔들리지 않는




내 친구는 어릴 때 엄마랑 시장에 가면 예쁜 구두에 넋이 뺏겨 사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사줄 때까지 엄마를 붙잡고 매달렸다고 한다. 집에 신발 많다고 등짝을 두들겨 맞아도 신발 파는 가게 앞에 딱 서서 울고불고했단다.


아이가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 달라고 장난감 상자를 들고 조른다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며 엉엉 우는 일. 나는 그래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알아서 미리 갖춰주어서 조르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위로 언니 둘과 아래로 동생 둘이 있는 다섯 형제 중 딱 가운데였던 나는 무언가를 풍족하게 가질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나도 가지고 싶은 것이 있었다. 열 살 때였던가, 금색과 은색을 포함한 48가지 색이 들어있는 크레파스가 갖고 싶었다. 커다란 상자를 열면 무지개를 펼친 것처럼 멋진 색들로 꽉 찬 그것을 갖고 싶었지만 사달라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좋아 보였지만 비싸 보여서 엄마가 사줄 것 같지도 않았고 꼭 갖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달리 열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 있다. 30대 중반의 나의 미술 선생님이 그렇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집 앞 미술학원이다.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이 다니던 곳으로 그녀는 그 학원의 원장님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장소를 찾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가 어른을 위한 강좌도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 강좌는 없지만 배우길 원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 오전에 오라고 했다. 그렇게 걸어서 1분이요 후다닥 뛰면 30초도 안 걸리는 코앞에 있는 미술학원 원생이 되었다.


왜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했나 하면 그 당시 나는 발이 없었다. 몸에는 발이 달려있었으나 마음에는 발이 없어 아주 천천히 마음의 몸뚱이를 밀어 기어서 앞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니 멀리 갈 수 없었다. 멀리 오래갈 기력도 없었다. 그래도 현실의 집을 벗어나 나를 다독일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라서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마다 스케치북을 챙겨 들고 미술학원을 갔었다. 내 마음에 다리를 그려주러 갔었다.


30대 초반의 눈이 커다란 선생님은 다정했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둘만의 수업이 계속되면서 서로 속내의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보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에서 한순간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 궁핍하게 되었던 십 대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도 미술학원에서 애들 가르치랴 대학원 수업 들으랴 작품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지만 그릴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최근에, 올해는 학원도 토요일까지 주 6일 열고, 개인전, 단체전 준비도 있고, 지역 예술가 모임, 여성 청년위원회 일 등등으로 너무 바쁘지만 새롭게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수업을 들으면서 삶의 질을 더 높여가는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힐링과 배움을 동시에 해서 정말 좋단다.


그녀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힘은 ‘그리고 싶다’이다. 그리고 싶은 간절함이다. 미술 학원을 다닐 집안 형편이 되지 않았던 중2 때 그녀는 엄마에게 동네에서 가장 수업료가 싼 학원을 스스로 찾아내 제발 보내달라고 졸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십 대와 이십 대를 거치는 동안 그녀는 풍족하게 후원을 받는 친구들을 보며 많이 울고 많이 힘들었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힘들수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엉엉 울다가 버럭버럭 화를 내다가도 돌아가게 되는 곳, 털썩 주저앉았다가 멀리 도망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곳, 밥벌이에 지쳐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가도, 밥때를 놓쳐 허기에 쪼그라들었다가도 결국 허리를 펴고 한 발 한 발 다시 가게 되는 곳이, 그녀에게는 ‘그리는 세상’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전시회에 걸고 싶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온전한 자신의 꿈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가진 그녀가 나는 부럽다. 그녀의 재능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열망이 부럽다. 꿈을 향해 나가는 뜨거움이 부럽다.


어떤 이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 했다. 몇 년 전 그는 단지 글만 쓰고 있었는데 ‘작가’라는 호칭을 갖고 싶어 했다. 가지고 싶은 것이 확실했던 그는 ‘가지지 못함’에 대해 어느 날은 한탄하고 어느 날은 속상해하고 어느 날은 울었다. 심지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버럭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갖고 싶다’를 놓지 않았다. 지금은 책도 내고 신문에 글도 쓰고 성인 대상 글쓰기 교실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사람도 나의 미술 선생님처럼 간절함을 놓지 않았기에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달아오르지도 뜨거워지지도 않는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내 글은 손가락이 쓴다고 가끔 친구에게 농담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러니 잘 쓴다는 말을 들으면 말린 대추처럼 쪼그라든다. 책 내 봐라, 그런 말을 들으면 아예 건포도보다 더 작게 쪼그라든다. 차려낼 요리가 없는데 식당을 하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당황스럽다.


오랫동안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없이 그럭저럭 그냥저냥 그저 그렇게 살아서 내 안에 숨어있는 열망을 찾지 못하는 걸까. 시를 쓰고 싶다고 하지 않고 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뜨겁지 않아서이다. 하여 이 공부는 숨어있는 불씨를 찾아보려는 길 찾기의 시작이다.


불씨를 찾아 활활 불을 일으켜보고 싶다. 그 불로 아직 아무것도 아닌 덩어리를 녹여 튼튼한 깃대 하나 만들고 싶다. 열망의 뜨거움으로 벼려진 단단한 뿌리를 내린,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장대 하나 갖고 싶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건 어떻게 불어오건 깃발이야 미친 듯이 흔들거려도, 그 깃발을 꽉 잡고 있어 줄 장대. 그것 하나 갖고 싶다.


깃발은 깃대에 매달린 날개

날개는 새의 깃발 깃털은 새의 꿈

바람은 심장이 뜨거운 새를 사냥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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