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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r 15. 2022

귀울림, 이명

나를 흔드는 내 안의 소리

이사를 하며 베란다 밖에 작은 풍경을 하나 걸었다. 바람이 있는 날이면 댕그랑 댕 맑게 울리는 풍경 소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내 방은 앞마당과 가깝고 내 잠자리는 창가라서 마당에서 나는 소리가 잘 들린다.    

  

한 달 전부터 자려고 누우면 풍경소리가 들렸다. 댕그랑 뎅, 뎅그랑 댕. 한창 꽃샘바람이 불 철이라서 베란다 바깥에 걸어둔 풍경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소리는 아주 작게 들렸다. 누워 있으니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고 생각했다. 희미하게 그러나 끊일 듯 이어지며 들렸다. 베란다의 두꺼운 유리문을 지나고 방의 두 개의 창문을 지나오는 동안 소리가 희미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비가 왔다. 문을 열고 비를 바라보는데 풍경 소리가 났다. 바람은 없었다. 비는 잔잔하게 내리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풍경을 바라보니 풍경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내가 풍경소리라고 믿었던 소리는 무엇인가? 


갑자기 소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풍경소리라고 생각했을 때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었는데 이제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들린다. 이제 소리가 신경 쓰인다. 곰곰이 따져보니 오른쪽 귀에서만 소리가 들린다. 귀가 정상이 아닌 상태라는 생각이 들자 소리가 불편하다.     


사람들에게 귀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이명이란다. 귀울림. 피곤하거나 힘들 때 나타날 수 있으니 쉬란다. 그래 요즘 나의 일터까지 찾아온 오미크론 때문에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 잠을 푹 자야 한단다. 맞아 요즘 너무 긴장이 심해서 잠도 잘 못 잤지. 심해지면 어지러울 수도 있단다. 요즘 살짝 어지러울 때도 있었지. 이명은 몸의 고단함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보다.  

    

시무룩한 마음으로 앉았다가 ‘뜨거운 씽어즈’라는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여든여섯 살의 배우가 나와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를 부른다. 60년 넘게 연기를 한 노배우의 노래가 바람으로 내 귓속으로 들어온다. 스르륵 가슴으로 내려가 흉곽을 부풀린다. 몸에 고인 바람이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다. 목이 뜨겁다. 콧날이 맵다. 


노래 한 가닥에 마음이 흔들린다. 천 개의 바람이라니. 나는 오늘 몇 개의 바람이었을까.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 어떤 바람이었을까. 퇴근 전 내게 친절하지 않은 동료에게 나도 찬바람을 날리고 왔다. 그래도 그이가 일으키는 바람과 내가 일으킨 바람이 맞붙어 회오리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오후에는 누군가에게 속상함을 털어놓으며 눈물 바람을 했다. 내 속이야 조금 후련했지만 갑자기 젖은 바람을 맞은 그 사람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노래가 끝나고 다시 이명이 시작된다. 귀울림, 어쩌면 내 속에 있던 바람이 나를 흔드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힘들어도 너무 흔들리지 말라고 나를 다독이는 마음의 풍경소리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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