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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pr 28. 2022

첫새벽에 발견한 작은 꽃봉오리 같은 기쁨

4월 행사에 사용하게 빔프로젝트를 빌려달라고 연락이 와서 어제 오후에 들려 전해주고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설치를 도와드리고 왔다. 나도 같이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바로 잠이 들었다가 새벽 네 시쯤에 깼다. 거의 여덟 시간을 잔듯하다.


깨보니 어제 행사 진행자였던 임 선생님께서 고맙다는 톡을 보내셨다. 선생님께 직접 빌려드린 것도 아닌데 굳이 감사인사까지 챙기시다니 배우는 순간이다. 임 선생님께서 SNS에 행사 후기를 올리시면서 그 글에도 고맙다는 언급을 해놓으셨다. 또 배우는 순간이다.


내가 빌려줄 수 있으니 빌려준 물건이었다. 도와준다고 생색 내 거 나하는 마음 없이 한 일이었다. 그냥 쓱, 별로 대수롭지 않게 한 일이었다. 고맙다고 따로 메시지를 받고 언급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이었다. 메시지를 받고 이 분이 사람을 잘 챙기시는구나라는 정도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배워야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주고받기가 되풀이되다 보면  마치 내 손으로 내가 내 밥 먹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흘려버리는 일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 자주 생긴다. 나도 그냥 쓱 보태는 성격인지라 남에게도 그냥 쓱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 내가 참 못하는 부분이다. 간단하게 쓱 말 한마디 건네면 되는데 살아온 습관이 다정하지 않아서 잘 못한다. 나는 못하면서도 누군가 내게 해주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무수한 누군가들도 내게 다정함을 받았으면 기분이 좋았었겠구나라는 늦은 깨달음이 왔다.


채송화 씨앗이 생각난다. 정말 작고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문장 끝에 찍힌 마침표처럼 작아서 씨앗 한두 개쯤은 흘려버려도 표도 안 나고 놓쳐버리기도 쉽다. 그렇게 잃어도 모른다. 그러나 씨앗을 잃는 것은 꽃을 잃는 것과 같다.


일상생활 속에 스며있는 작고 친숙한 관계들은 마치 채송화 씨앗처럼 눈에 쉽게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쉽게 잃어버리게 된다. 잘 지켰으면 꽃으로 피어날 관계들이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별거 아니라고 무심했던 일들에 신경 써서 관심의 물을 주어야겠다. 꽃이 피면 기쁘고 반갑지 않겠는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람들은 맘대로

열흘 붉은 꽃 없다 말하지.

 

어, 꽃이다!

꽃 피듯 불쑥 팔을 뻗는다.

어디?

꽃 피듯 불쑥 고개를 쳐든다.

저기 저기!

꽃 피듯 불쑥 어깨를 들썩인다.

아하, 정말!

꽃 피듯 불쑥 웃음이 핀다.


사람들이 꽃으로 피어난다.

 

지지난 해에도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또 내년에도

꽃은 매양 그 자리에서 피어

겨우내 시든 사람들을 다시 피우고 있는데

 

사람들은 맘대로

열흘 붉은 꽃 없다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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