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ker 한영 Dec 07. 2020

국토종주를 꿈꾸다.

01_프롤로그

국토종주를 꿈꾸다.


'내 두 발로 걷는 행위'인 걷기는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큰 희열이었다. 수십만 년 전부터 직립보행족으로 걷기를 체화했던 인간의 본연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난 걸으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걷기에 빠져 5년 간 주말마다 전국을 걷고 있을 때였다.


나 스스로 '걷기 하는 사람'임을 자처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국토를 종단하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5년 동안 해오던 조성된 트레일 명소를 찾아가는 걷기와 우리나라를 한 발자욱도 빠짐없이 이어 걷는 국토종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한민족이 대대로 살아온 땅의 실재가 궁금했다.


생긴 대로 자연 그대로의 국토엔 한국인으로서 우리네의 '삶'과 그 다양한 삶을 배태하고 있는 우리의 '땅'의 전모가 들어있다. 


70만 년 전부터 이 땅과 인연을 맺었던 인류(호모 에릭투스)에게 삶의 터를 제공했던 보배로운 땅, 가까이는 단군조선을 성립하고 민족의식을 쌓으며 반만년을 살아온 우리의  금수강산, 그 정기를 이어 숨 쉬는 현재의 모습, 그리고 이 땅에서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각색 지방의 사는 모습과 삶의 향기, 곳마다 다른 고유의 자연과 풍광, 그곳의 꽃 하나 나뭇잎 하나 바람 한줄기까지 모든 게 궁금했다.

문제는 우리 국토를 어떻게 어떤 루트로 걷느냐는 것이었다.


인공에 도배돼 우리의 땅의 실체를 느낄 수 없는 찻길로 걷는 기존 방식의 국토종주만은 피하고 싶었다. 도배된 찻길에선 느낌도, 감흥도, 영감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국토종주를 떠나기 전 서점에서 찾아본 국토종주 서적들은 모두 최단거리의 찻길을 중심으로 걷는 것이었다. 


우리 국토의 속살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던 내게는 다른 길이 필요했다.  찻길 따라 걷는 것이 가장 단 기간에, 가장 수월하게 국토를 종주하는 수단은 될 것이다. 그러나 찻길이라는 똑같이 생긴 길에서 느낌이나 배움보다 완주 후에 피로하고 힘들었던 기억만 뇌리에 남는다면 국토종주를 위해 들여야만 하는 수많은 시간이 아까웠다. "국토 종주했다"는 자기만족 이상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길로 가자


그래서 용단을 냈다. 찻길을 배제한 새로운 '사람길 국토종주'를 떠나기로 했다. 차가 길의 주인인 찻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사람길로 걷는 국토종주다.


그동안의 국토종주는 찻길을 따라 걷다보니 그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이고도 '완주'라는 의미 외에 '국토의 발견과 감흥'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국토종주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이고, 찻길 따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국토종주를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는 사람도 루트가 제각각이다. 아직 금수강산이라는 우리나라 땅에 국토대장정을 떠날 수 있는 이렇다할 도보 루트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길 국토종주 루트가 없다. 해외에까지 도보 루트를 찾아 원정걷기를 떠나면서도 우리나라 국토대장정은 어떤길로 가야할지 모른다는 것은 한국인 모두의 수치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국도나 지방도 등 찻길을 완전히 배제하고는 길을 이어갈 수 없다. 그렇다고 산으로 올라가서 종주 내내 능선을 타고 간다면 다양한 국토의 모습과 그 땅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없고 국토종주가 아닌 산행이 되고 만다. 그 사이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국토종주 루트를 찾아야 했다. 개척의 길이었고, 인생 도전이었고, 어찌 보면 탐험이었다.


우리 땅의 실체를 밝혀가기 위해 사람길로 걷기 위한 도전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우리 국토의 보석 같은 속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고, 그 현장을 눈 앞에서 오감으로 마주했다.

일부러 명소를 찾아간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길 루트 속엔 우리가 살면서 꼭 가봐야 할 우리 땅의 인생 명소가 쉴 새 없이 계속 이어졌다. 알려지지 않았던 숨어있는 장소는 내 가슴을 더욱 뛰게 만들었다.


또한 단절됐던 선조들의 얘기를 듣게 해 주었고, 모르던 지역의 삶을 알게 해 주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연대 속에, 역사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사람길 국토종주는 소통의 길이었다.


너무 벅찼던 사람길 국토종주는 지금도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가득한 설렘으로 회상된다.


국토종주가 끝난 후 찻길로 당시 걸었던 루트 주변을 지나갈 때면, 저 멀리 사람길을 따라 지금도 우리 일행이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땅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희열과 즐거움에 가득 찼던 그때가 지금도 감동의 전율을 일으키며 떠오르곤 한다.

국토종주가 끝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이유는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곳의 우리 땅을 지키는 분들이 만들어낸 향기와 그 땅만이 보여주는 자연의 경이와 청아한 물소리 공기까지 걸으며 마주했던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특별했던 인생 경험으로 남겨진 '사람길 국토종주',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슴 벅찼던 여정을 하나하나 되새김질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