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도비렁길 도보답사기 1.

금오도비렁길 1코스(1)

by Hiker 나한영

1. 봉산 금오도를 향해


여수 금오도로 가는 길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내가 살던 곳에서 멀리 떠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과 바다와 섬들이 너무 많아 오목조목 오밀조밀한 국토의 생김새만큼이나 곳곳마다 색다르고 가볼 곳이 너무 많다. 발길 닿는 곳이 다 가슴을 뛰게 할 만하다.

4월 첫 주말 우리나라 최고 남쪽 여수 금오도로 향했다.

밤 12시에 출발해 캄캄한 밤길을 밤새 달려 여수 남단의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한 섬섬백리길의 백야도로 들어가서 새벽 5시쯤 백야항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매표소가 문 열기를 기다리는데 동편 항이다 보니 다도해와 앞 섬 돌산도 위로 해가 떠오르는 장관이 펼쳐진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고 반짝반짝 윤슬까지 긴 띠를 이룬 생각지도 못했던 최고의 일출 장면을 마주하다니 오늘은 행운의 날이다.

배표를 끊고 차도 배에 싣고 금오도로 향한다. 잠을 못 잤는데도 상쾌하다.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 때문일까 남쪽 바닷바람이 너무 깨끗하고 상쾌해서일까.


백야항 일출. 여수 앞바다의 돌산도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첫 배의 출항을 기다린다.(좌)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남해의 섬과 섬 사이를 뚫고 시원하게 뱃길을 달린다.(우)



봉산이었던 금오도

다시 40분을 뱃길을 달려 드디어 오전 8시에 금오도에 도착했다. 주말 아침 집에서 늦잠을 자거나 잔뜩 게으름을 필 시간에 우리나라 최남단, 그것도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청정 섬 금오도에 지금 내가 서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 뿌듯하다. 날이 화창해 마음마저 붕붕 뜬다.

금오도는 옛날엔 '봉산'이라고 해서 천길 낭떠러지의 해풍을 맞고 자란 황장목 등 왕실의 건축 목재로 사용하던 벌목장과 사슴목장이 있어 조선시대만 해도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봉해진 섬이었다. 봉산이었던 때문인지, 섬의 규모 치고는 산이 높아서인지 금오도는 청정함과 자연미가 돋보인다.


금오도 함구미항에 도착. 함구미 마을이 보인다. 비렁길 1코스가 시작되는 함구미항까지 가장 빠른 직항로가 백야항에서 출발하는 배편이다.



순수한 함구미 항구와 마을

도착한 함구미항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산뜻해 인공적 선착장이라는 느낌보다 자연으로 통하는 문 같은 신비함 마저 감돈다. 그 유명한 금오도비렁길의 시작점이고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지만 그 흔한 횟집 하나 없다. 분명 어항이 아닌 모습이다.

항구는 대부산(382m) 자락이 싸고도는 지형 안쪽에 자리한다. 산 줄기가 서쪽 끝으로 돌출된 형상이 마치 용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용두'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산이 해안가에서 기암절벽을 이루며 끝나는데 아홉 골짜기의 절경을 이루기 때문에 이를 뜻하는 이름으로 함구미含九味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엔 항구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함구미 자연마을이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티뷰론 언덕처럼 항구를 바라보는 해안가 산비탈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은 사람이 사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면서도 깨끗하다.

아직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이런 순수한 모습이 고향 감성을 깨우고 한 달 만이라도 다도해의 청정 섬인 이곳에서 살고픈 마음이 들게 만든다.

금오도는 대부분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세울 때 바로 이곳 함구미마을의 소나무를 가져가서 목재로 사용했다고 할 만큼 우수한 산림자원을 갖고 있다. 해안의 절벽 또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해상국립공원의 푸른 바다와 신록 우거진 산의 청정 자연과 경치를 벗 삼아 심신을 쉬며 머물고 싶은 곳이다.


산자락 경사면을 따라 자리한 함구미마을



2. 비렁길 걷기를 시작하다.


비렁길 초입부터 비경이 자연스러운 곳

마을 골목길 초입에서 이어지는 비렁길 1코스로 접어들자마자 왜 비렁길인지를 증명해 주는 듯 항구 쪽 해안가와 섬들의 경연장 같은 다도해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걷기 시작부터 탄성이 나온다. 처음부터 드는 생각은 그저 모든 것이 "이대로만 같아라"이다. 이대로 더 이상 바랄 게 없이 좋다.

산비탈을 돌아가는 해안가 자연길을 따라 동백나무가 줄을 잇고 이름 모를 나무들과 꽃들이 숲터널을 이루어 그냥 지나갈 수 없도록 발길을 붙잡는다. 숲 너머로 보이는 청정 바다까지 그냥 눈에 보이는 모두가 평소에 못 보던 비경인데,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그냥 자연의 일부가 되어 즐기면 될 뿐이다. 갑자기 이름 모를 봄꽃 향기가 봄바람을 타고 전해오고, 도시에선 못 듣던 청량한 새소리가 청정 자연 속에 있는 행복감을 배가시킨다.


키 큰 동백나무가 지키고 있는 마을길로 들어서면 초입에 비렁길 이정표가 소박하게 걸려 있다.
다양한 길 위로 연속되는 숲 터널들과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청정 바다를 끼고 걷는다.



땅에서 핀 동백꽃


"동백꽃이 말씀하신 대로 땅에 피었어요"


일행 중 샤멜라 님이 걷다가 말한다.

동백꽃은 졌다고 지는 것이 아니다. 나무에 화사하게 피어났던 그 모습 그대로 목이 떨어져 땅에 내려서도 처연하리만큼 끝까지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걷다 보니 동백꽃이 길가 땅 위에 여기저기 피어있다.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흐트러짐 없이 아름다운 자태다.


"맞아요 난 이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백꽃은 세 번 피어난다고 하잖아요"


일행들이 모두 눈이 커져서 왜 세 번이냐고 묻는다.


"한 번은 나무에서 피고, 또 한 번은 땅에서 피고, 나머지 한 번은 가슴에서 핀다고 해요"

"아~!"


동백꽃 전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못해 죽어서 동백꽃을 피우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만큼 동백꽃은 모든 걸 다 바치는 애절한 사랑을 상징한다.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답게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랑을 지켜내려는 마음이 대입된다.


땅에 떨어져서도 화사한 모양이 변하지 않는 동백꽃



상괭이 바다의 바위 절벽을 향해

숲이 터널을 만들어도 안 만들어도 풍경이 너무 예쁜 해안가 자연길이 이어진다. 빽빽한 대나무숲도 지나고 정겨운 옛 돌담만이 절벽 해안가 마을이 있던 곳임을 알리는 옛 마을 터도 지난다.


"이제 조금 더 가면 미역널방이에요."


1코스의 명소 중 명소, 웃는 모습의 우리나라 토종고래 상괭이가 사는 바다 위로 깎아지른 천길 낭떠러지의 바위절벽이 서 있는 곳이다. 옛날에 볕이 잘 드는 절벽 바위 위에 주민들이 미역을 널어 말렸다고 해서 미역널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의 모습과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놓인 데크길이 무서우면서도 아름다운 비경을 연출해 이래저래 숨을 멎게 만드는 미역널방이 벼랑 숲길을 통과하자마자 환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계속>


금오도 비렁길 1코스의 예쁘고 이색적인 다양한 자연 숲길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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