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혼자 걷기여행을 떠나곤 한다. 홀가분하고, 그야말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여행을 위해 지난주는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 시내 여행 후 고군산군도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 주는 옛 거리들과 박물관들, 군산만의 맛집 짬뽕 거리와 줄 서야만 살 수 있는 옛 빵집, 옛 추억들이 모두 모여 있는 철길마을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흥분과 설렘을 안겨 준 군산 시내 여행 뒤에 서해의 보석 고군산군도로 향했다.
고군산군도에서 몇 박 며칠을 머물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번은 맛보기 격으로 차로 갈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걷기여행을 떠났다. 다니다 보니 미국 사람들처럼 1주일 간 휴가를 얻어 머물고 싶은 곳이 고군산군도였다.
철길마을(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아래좌), 이성당(우)
예부터 유명했던 고군산군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명소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고, CNN이 "아시아의 보물 같은 여행지"라며 반한 고군산군도는 16개의 유인도를 포함해 총 63개의 구릉성 섬의 군락이다.
키웨스트가 생각난다. 고군산군도의 중심을 이루는 아름다운 6개의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 연결해 육지처럼 가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섬의 군락이다 보니 예부터 풍부한 어족자원에다 장삿배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주민들의 부유함과 사치가 육지 백성보다 심했다는 기록이 택리지에 실려 있을 정도로 고군산군도는 옛날부터 유명세를 치렀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은 군산도에 정박하고 나서 "정박한 곳의 산은 열두 봉우리가 잇닿아 둥그렇게 둘러서 있는 것이 성과 같았다. 정자가 바다에 닿아 있고 뒤는 두 봉우리에 의지하여 있는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어 절벽을 이루고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라고 고군산군도의 바위섬의 특징을 기술하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 고군산군도로 향한다. 끝없이 곧게 뻗은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면 양 옆으로 펼쳐지는 바다 한가운데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 한번 걸어서 총 34km의 방조제를 완주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새만금 방조제 중간 쉼터에서 쉬어 가면 새만금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이스타섬' 야미도, 석상은 어디에
한없이 달리다 보면 방조제에 거의 묻히다시피 한 야미도를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게 된다. 그러나 야미도는 젊은 여행자들에게 '한국의 이스타섬'으로 불렸던 곳이다. 너른 갈대밭 벌판에 이스타섬의 모아이 석상을 닮은 석상들이 줄지어 서 있어 이국적 풍경을 자아냈다.
지금은 강풍에 모두 철거됐고 거대한 돌문 같은 꽃게 조형물만 남아 있다.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이 돌문 조형물 만으로도 너무 멋져 포토존이 되기에 충분하다.
마치 고군산군도를 여는 문처럼 서 있는 야미도의 꽃게조형물
고군산군도의 주봉 월영산이 있는 신시도
야미도를 지나면 바로 신시도이다. 고군산군도의 가장 큰 섬으로 월영산(199m)의 두 봉우리(월영봉, 199봉)와 대각산, 앞산 등 4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에서 1시간 이내에 고군산군도의 주봉인 월영산 정상(199봉)과 월영봉, 두 봉우리에 갔다 올 수 있다.
신라 말 어린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전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월영산은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루는 암산이 압권이고 이곳에서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관리도로 이어지는 섬의 무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고군산군도를 왜 신선의 섬이라 했는지 알만 하다.
나는 못 봤지만 섬 군락 사이로 붉게 물들며 지는 저녁 낙조의 풍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고 하니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꼭 저녁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영산 고개에서 새만금방조제 배수관문을 구경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배수관문은 일정 시간에 개방하기 때문에 개폐시간을 확인하고 가면 새만금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에서 지척에 보이는 월영산과 주상절리
월영산에서 바라본 숨막힐듯 경이로운 고군산군도 전망
신시도길은 구불7을 말한다. 등산로를 같이 걸으면 감동이 배가된다.
'걷기 좋은 여행길'로 선정된 신시도길
나는 월영산만 간단히 다녀왔지만 월영봉을 넘어 신시도길(구불 7길, 12.3km)로 걷기를 이어갈 수 있다. 월영봉에서 몽돌해수욕장, 해안데크길, 199봉 바닷길로 신시도를 한 바퀴 돌아 출발한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길이다. 신시도길은 한국관광공사의 '걷기 좋은 여행길'(2018.1.)로도 선정된 바 있다.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에서 다시 차로 길을 나선다. 신시도에서 무녀도로 건너가기 바로 전에 신시도 어촌체험마을이 있다. 신시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신시도 초등학교가 있는 어촌마을로 골목마다 옛 어촌 풍경을 담은 벽화가 이채롭다. 이 마을은 오염되지 않은 넓고 깨끗한 갯벌과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장점 등으로 갯벌체험을 하기에 제격이다. 신시도 바지락은 씨알이 굵고 육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신시도마을은 신시도길로 걸어서 갈 수 있다.
신시도마을이 옛 추억의 벽화와 함께 깨끗하게 잘 가꿔져 있다.
고군산대교 건너 '생산의 섬' 무녀도로
이어 현수교인 고군산대교를 건너 무녀도로 향한다. 예전엔 1박 2일을 잡아야 갈 수 있던 고군산군도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꾼 다리가 고군산대교이다. 주탑이 한 개인 현수교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공법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이유는 없고 단지 섬의 모양이 무당이 춤추는 모습을 닮았다고 무녀도란 이름을 갖게 됐는데 원래 이름은 서들이 섬이었다. 갯벌과 바다에 나가 부지런히 서두르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축복받은 땅이란 뜻이다. 말대로 예부터 주민들이 부지런해서인지 무녀도는 다른 섬과 달리 3만 평의 논과 18만 평의 염전을 가져 섬 속의 육지로 불리기도 한다. 또 광활한 갯벌에서 바지락, 굴 채취와 김양식 등으로 선유도처럼 관광보다는 생산의 섬으로 역할하고 있다.
마치 '섬 분재'처럼 특별한 섬, 쥐똥섬
무녀도 초입엔 쥐똥섬이 있는데 간조 때만 길이 열리면서 갯벌이 드러난다. 물때를 맞춰 가면 섬에 들어가 볼 수 있는데 크기가 쥐똥만큼 작지만 웅장한 산의 축소판 같은 바위, 나무, 해변 등 있을 건 다 있어서 마치 분재처럼 섬을 축소한 '섬 분재' 같이 무진장 특이하고 아름답다.
쥐똥섬 앞엔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실내포차와 스쿨버스를 개조한 노란 버스 카페가 운치를 더한다.
선유도를 향해 무녀도를 빠져나가려는데 언덕길 오른쪽에 조망정차대가 자리한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주차장만 넓어서 놀라게 되는데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앞 하트섬 뒤로 망주봉이 조망된다. 선유도로 건너가는 선유교와 섬에 둘러싸인 아늑한, 유서깊은 선유도 선착장, 그리고 명승지 망주봉(뒤에 상세 기술)의 암산의 위용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물 때를 맞춰 가면 쥐똥섬에 들어가 볼 수 있다.(좌) 무녀도 조망정차대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선유도 선착장과 망주봉이 함께 조망된다.(좌)
원래 군산도였던 고군산군도의 대표 섬, 선유도
정차대에 잠시 들렀다가 고군산군도의 대표 섬인 선유도로 향한다. 고군산군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신선이 놀았다고 불린 이름만큼이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선유도의 본래 이름은 군산도였다. 고려시대에 송나라 무역로의 기항지였고 수군 기지인 군산진이 있었는데 조선 세종 때 기지가 육지(지금의 군산)로 이전하면서 이름도 가져가 섬 지역 전체를 옛 고古자를 써서 고군산군도라 부르게 됐다.
이후에도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승리 후 전열을 재정비했던 해상요지로 역할했다. 선유도의 중심 마을인 '진말'의 이름이 군산진이 있었던 곳임을 알리고 있다.
제대로 멋진 풍광 만끽하려면 구불 8길 걷기
구불 8길 걷기 코스가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녀도와 장자도, 대장도까지 연결돼 있어 이곳은 어디쯤엔가 차를 놔두고 꼭 걸어 다니는 걸 추천한다.
선유스카이 SUN라인(짚라인) 위치에서 시작해 망주봉 앞길로 천사날개벽화를 지나 선유 3구 마을 골목을 누비고, 기도등대와 대봉전망대, 몽돌해수욕장, 명사십리해변의 풍광과 벗한 뒤 선유스카이 SUN라인으로 돌아와 인도교인 구장자교를 건너 장자교와 대장도까지 걸어갈 수 있는 코스가 구불 8길 A코스(12.4km)이다.
무녀도 주차장에서 시작해 무녀염전을 보고 무녀봉에 오르고 선유교를 건너 옥돌해수욕장과 선유봉, 선유스카이 SUN라인을 경유하며 선유도의 본체를 한 바퀴 도는 길이 구불 8길 B코스(8.8km)이다. 두 길을 섞어서 걸어 다녀도 좋다.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를 걸어서 볼 수 있는 구불8길
선유도와 장자교를 잇는 인도교 구 장자교(좌)와 장자교(우)
선유 8경 중 7경을 가진 힐링 코스
최근에 새로 생긴 선유도 남쪽 해안을 따라 도는 해변데크산책로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다. 이 길을 걸으면 건너편 무녀도와 선유도 사이의 작은 만 같은 바다 위에 손에 닿을 듯 떠 있는 무인도가 아늑한 별천지를 자아낸다. 장구도, 주삼섬, 앞삼섬과 고깃배가 오가는 풍취는 선유 8경 중 ‘삼도귀범’에 속한다.
구불 8길에서 마치 10리나 되듯 길다는 백사장인 명사십리해변엔 새로 전망대가 설치됐다. 이곳은 전망대가 아니라도 예부터 해질녘 서쪽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선유낙조’는 고군산군도의 으뜸 풍경으로 꼽힌다. 고군산군도가 다리로 연결되기 전엔 이 일몰을 보느라 하룻밤 묵어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낙조의 풍경은 옆에 망주봉에라도 오르면 그야말로 더 이상이 없다. 망주봉에서 바라본 '선유낙조'는 서해의 낙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360도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바다 위에 한 쌍의 바위벽 같은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는 망주봉은 경관적 보존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의 명승자원조사보고서 <전라북도편>에 따르면 선유8경 중 망주봉에서 6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또 비가 많이 올 때 망주봉 입구 솔섬에서 보면 망주봉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흐르는 폭포의 절경도 볼 수 있다.
앞서 서두에서 얘기했던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편찬한<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따르면, 망주봉에 바다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오룡묘(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9호)가 있고, 송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숭산행궁(객관) 군산 선유도 고려유적(전라북도 기념물 제135호, 지정 2017.4.7.)과 군산정(정자), 자복사(사찰)의 터가 남아 있어 역사적 보존가치 또한 높다. 경관, 역사 등에서 탁월한 망주봉 일원은 2018년 대한민국의 명승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