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는 책이다."

완주기행 1. 삼례책마을

by Hiker 나한영

삼례책마을을 향해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삼례책마을까지 채 10분이 안 걸리는 짧은 거리였지만 전원 풍의 길이 정갈하고 길가의 건물들에서 개성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삼례책마을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오른다.

6월 3일 토요일, 아침 햇살이 상큼하게 내리비치는 오전 10시경 설렌 마음을 안은 채 삼례책마을 주차장에 내렸다.

여행자 쉼터 쉬어가삼[례:]

책마을 길 건너편에 쉬어가삼[례:]가 먼저 보인다. 삼례의 역사·문화·관광 등 지역 안내를 위한 집적시설로 여행자 쉼터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원래 쉬어가삼[례:]가 자리한 장소는 1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삼례역이었다.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아 여행객들의 쉼터로 변신한 것이 낯설지 않다.

한옥식 지붕의 건물 실내는 1층 좌우에 전시실을 마련해 옛 삼례 역참과 완주의 의병 역사가 소개돼 있고 옛 삼례역의 철길이 바라보이는 뒤쪽으로 테라스 썬룸처럼 개방감 넘치고 아늑한 예쁜 쉼터 공간이 건물 후면부 전체에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를 위한 진심 어린 배려와 쉼터의 역할이 건물 공간에 녹아들어 있다.


'쉬어가삼'을 강조하기 위해 큰 글자로 눈높이에 맞춰 배치한 쉬어가삼[례:] 건물(좌), 내부에 개방감과 아늑함을 갖춘 쉼터 공간이 옛 삼례역 방향으로 넓게 자리하고 있다.(우)


삼례책마을의 구성

삼례책마을의 북갤러리 앞 데크에 서니 넉넉한 품의 잔디 마당을 가운데 두고 북갤러리, 책박물관 (한국학아카이브), 북하우스, 책마을센터가 빙 둘러 자리한 모습이 편안하고 깔끔하다. 이 네 건물들이 책박물관 구역을 형성하고, 이곳에서 250m 떨어진 곳에 따로 그림책미술관이 자리한다. 이를 통틀어 삼례책마을로 부른다.

북갤러리는 전시와 강연, 공연 시설로 복합문화공간이다. 그 옆 책박물관은 비중 있는 전시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지금은 <안서와 소월> 전시가 열리고 있다. 1999년부터 2000년대까지 논란이 컸던 김소월의 시 <못잊어>의 원작자에 대한 전시여서 궁금증이 배가된다.

또 그 옆 북하우스는 삼례책마을의 전체 이미지를 상징하는 중심 건물로 북카페와 헌책방, 서고로 사용되고 있다. 50년대에 지어진 낡은 양곡창고를 개조해 조성했는데 그 멋스러움이 최신식 건물을 뛰어넘는다. 양곡창고의 빈티지 분위기가 '책' 하면 떠올리는 삶의 여유와 사색의 이미지와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너른 잔디 마당을 중심으로 삼례책마을 건물들이 빙 둘러 조성돼 있다.(책박물관 구역)


한국 최초의 책 전문 박물관

책박물관은 비중에 있어 삼례책마을을 대표한다. 서울 종로의 고서점 호산방 박대헌 대표가 1999년 강원도 영월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책 전문 박물관으로 2013년 이곳 삼례로 이전해 왔다.

책박물관은 《고려본》, 《무정》,《춘향전》, 《님의 침묵》, 잡지 《소년》과 방정환의 《어린이》 등 고서·잡지· 포스터·사진 등 수천여 점에 달하는 원본 자료가 소장되어 있어 한국 근대 인쇄문화의 보고라 불리기도 한다.

책박물관을 근간으로 완주 지역민이 중심이 되어 국비 확보와 조성사업을 거쳐 2017년 삼례책마을(박대헌 이사장)이 개관됐다.


편안한 분위기의 무인서점

책박물관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안서와 소월> 전시회가 열리는 책박물관 건물로 들어서니 전시관 입구 양 옆으로 무인서점이 있다. 서까래가 노출된 소박한 자연미가 돋보이는 공간 안에 절판된 헌책들이 다양한 장르에 걸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책을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책들이 깔끔하고 뒤표지에 가격이 붙어 있는데 옛 가격의 현재 가치 이하 정도로 부담 없이 구매할 만하다.


책박물관 건물 입구에 서까래가 노출된 무인서점이 정겹다.


"김소월 시 <못잊어>는 김억 작품"

전시실은 <안서와 소월>(2023. 5. 9. ~ 2024. 5. 12.) 전이 한창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안서와 소월, 그들은 사제지간 이전에 작품세계를 함께 공유한 문학적 동지였다"는 문구가 흰 입구 벽면을 차지하고 방문객을 맞는다.

전시 테마는 "시 <못잊어>는 김 억 작품"이라는 데로 모아진다. 이를 증명하는 안서 김 억의 편지 원본이 전시돼 있다. 그동안 출간된 김소월 시집 책들과 소월의 필체를 볼 수 있는 원고도 전시돼 있다.

김소월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못잊어>의 원작자에 대한 논란에 대하여는 아래 별도의 '글 중 글' 챕터에서 얘기해 본다.


'김소월 시 <못잊어>는 김 억 작품'이라는 데로 모아지는 전시


책마을의 중심 건물 북하우스

북카페 전면의 통창이 활짝 열려 있는 북하우스로 향한다. 어느 계절이든, 어느 날씨든 앞 뜰의 정원을 바라보는 너른 통창의 북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세월을 잊을 것 같고 그 자체로 힐링일 것 같다.

카페 바로 옆의 입구 지붕에 어린 왕자가 자연스레 앉아 있고 그 아래 벽면에 자전거 한대가 놓여 있는 풍경이 양곡창고의 빈티지 풍 외장과 어우러져 북하우스의 이미지를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표현해주고 있다.


북하우스 건물의 북카페(좌)와 출입구(우)


입구를 들어서면 양곡 창고 실내 전체를 활용한 확 트인 너른 공간의 개방성에 놀라고 대단한 장서에 놀란다. 약 1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전국 최고, 최대의 헌책방이다.

1층의 소박한 평대에 추억 어린 헌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철수야, 영이야 이리 와 놀자, 바둑아 뛰어라" 큼직한 글자가 정겨운 삽화와 함께 그려진 국민학교 1학년 교과서도 눈에 띈다.

2층으로 오르면 서가의 책들 속에 푹 파묻혀 볼 수 있다. 다리로 연결된 트인 공간들을 통해 1층과 합해진 특별한 디자인의 서가의 멋스러움에도 빠져 볼 수 있다.

1층 평대에 추억어린 다양한 책들이 장르별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북카페가 천정까지 시원하게 뚫려 북하우스의 개방적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좌) 2층의 공중 다리(중)와 헌책이 빼곡히 진열된 서고(우)
천정까지 1~2층을 하나로 이어주며 뚫린 서고가 북하우스의 상징적 공간이 되고 있다. 2층에서 바라본 모습




정말 김소월 시 <못잊어>는 김억의 작품인가?


안서 김억의 편지에 적힌 시

삼례책마을 박대헌 이사장은 김소월의 대표 시 중 하나인 <못잊어>를 안서 김 억이 먼저 썼다고 1999년 최초로 제기한 인물이다.

김소월은 <못잊어> 시를 <思慾絶Ⅰ, 못닛도록 생각나겠지요>라는 제목으로 1923년 5월에 발간된 <개벽> 35호에 처음 발표했는데, 그 2개월 전인 3월 23일에 안서가 친구 유봉영(나중에《조선일보》 주필, 제8대 국회의원 역임)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열일곱살짜리 애인’을 떠나보낸 고통스러운 심정을 토로하면서 <못잊어>와 같은 내용의 즉흥시를 적어 보냈다. 편지에 쓰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못닛도록 생각이 나겟지요,

그런대로 歲月만 가랍시구려.


그러면 더러는 닛치겟지요,

아수운대로 그러케 살읍시구려.


그러나 당신이 니르겟지요,

‘그립어 살틀이도 못닛는 당신을

오래다고 생각인들 떠지오릿가?’


안서 김억은 편지에서 ‘같이 살자’고 청하는 17세 난 애인을 떠나보낸 데 ‘죄를 지었다. 그러나 어찌하느냐’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떠나는 이에게 즉흥으로 이 시를 주었다고 한다.


김소월의 <못잊어>와 내용과 분위기가 유사한 시가 쓰여 있는 안서의 편지(1923년 3월23일)


안서와 소월의 특별한 관계

널리 알려진 대로 안서는 소월의 ‘특별한 스승’이었다. 안서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소월의 시재(詩才)를 발굴해 키웠고, 그를 문단에 데뷔시키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 스승’이 되어 주었다. 안서는 소월이 쓴 대부분의 시를 미리 받아 첨삭·정서한 다음 잡지사에 넘겼다.

스승의 가르침은 소월 사후에까지 이어져, 안서는 소월의 유고를 ‘손질’해 각종 잡지에 발표했고, <소월시초>(39년) <소월민요집>(48년)을 펴내기도 했다.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이자 당대의 이론가였던 안서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인 소월의 평생을 이끈 각별한 스승이었다.


"안서가 소월에게 소재 준 듯"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안서가 소월에게 ‘나에게 이런 소재가 있는데, 네가 재주가 있으니 써보아라’고 했을 가능성이다. 소월의 습작 노트가 모두 안서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가정이다. 안서는 23년 5월 소월의 <못잊어> 시 발표에 아무 말이 없다가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김소월의 추억>에서 ‘일찍이 소월이가 노래한 <못잊어>의 한 편을 생각’하면서 소월의 자취를 그리워했다. ‘소월이가 노래한 <못잊어>’라고 인정한 것이다.

96년 <김소월전집>(서울대학교 출판부)을 펴낸 김용직 명예교수(서울대·국문학)는 안서가 소월에게 시의 소재를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안서의 편지에서 발견된 시들이 두 시인의 아름답고 긴밀한 정신적 유대를 확인케 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제 간의 끈끈한 관계를 생각하면 <못잊어>를 ‘누가 누구의 것을 베꼈다’는 식으로, 지금의 기준으로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군·사·부 일체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설사 누구의 것을 이용했다 해도 전혀 섭섭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거목의 끈끈한 사제의 정 확인

책박물관의 <안서와 소월> 전은 "김소월 시 <못잊어>는 김 억 작품"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사제지간을 뛰어넘는 문학적 동지였음도 동시에 강조한다.

결국 한국 문학사의 일획을 그은 두 거목의 끈끈한 사제의 정과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한국 근대시문학을 배태한 이유와 그 이해를 높이는 뜻깊은 전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