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다닐 때 캠퍼스엔 차가 없었다. 그래서 캠퍼스는 젊음이 맘껏 활개 치는 자유와 해방구로 기능할 수 있었다. 지금 캠퍼스에 가 보면 길의 거의 대부분을 차에 내주고 옆에 좁은 인도를 따라 줄지어 걸어간다. 자신이 주인이 돼야 할 캠퍼스 안에서도 학생들은 도심의 거리와 똑같은 모습이다.
길에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없는 도시, 차가 점령한 도시에서 인간은 고립된다. 모두들 홀로 차 안에 갇혀 길로부터 고립되고, 사람으로부터 소외된다. 사람 간 소통도 단절된다. 우리는 그렇게 홀로인 도시생활에 익숙해졌다.
고독해진 도시인의 대체제는?
찰스 몽고메리의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 나오는 한 인물은 어느 날 차를 버리고 직장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한다. 정체된 차들이 꽉 막혀 있는 다리 아래를 뛰어가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드디어 걸어서 직장에 도착한다. 그때의 경험을 그는 ‘마치 영웅이 된 것 같았다’고 한다.
그는 매일매일 걸어서 직장에 다니면서 차를 팔아버리고, 일을 줄이고, 사람들과 더 많이 놀고 연대한다. 돈을 적게 벌자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현대사회의 소외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연대할 줄 모르고 함께하는 기쁨을 잃었다. 고독해진 도시인이 대신 추구하게 된 것이 과시욕과 탐욕이다. 그럴수록 더 고독해지는데도 소외의 반대급부를 얻기 위해 멈출 줄 모른다.
어떤 도시가 행복한 도시인가?
도시와 사람,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책의 저자 찰스 몽고메리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주인’ 임에도 불구하고 탐욕과 판단착오 때문에 스스로 주인임을 거부하고 있는 현대 도시민의 삶 속에서 행복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찰한다.
저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정한 행복한 도시는 어떤 모습일지 살펴본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도시는 쾌적한 기후, 고학력, 고소득의 이웃이 모여 살거나 집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생각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한다. 범죄의 도시였던 보고타, 춥고 긴 겨울을 자랑하는 코펜하겐이 행복한 도시로 사랑받고 있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행복한 도시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도시다. 오롯이 인간에게 집중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편의와 안락함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큰 집이나 비싼 자동차, 멋진 이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자녀가 마음 놓고 길거리를 뛰어다녀도 되고, 자전거로 학교를 통학할 수 있으며, 보행자들이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자본과 자원으로 잠식된 도시에서 다시 사람이 중심이 된 도시를 꿈꿔야 한다. 혼란스러운 도시를 바꾸고 불행한 도시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이 바로 우리가 될 수 있다.
서울은 사람 중심의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차츰 도시계획 설계자들, 정책 입안자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바둑판 식으로 찻길을 먼저 줄을 긋고 지구를 지정해 건물을 배치하던 그동안의 도시계획은 사람이 소외된 설계였다. 사람 간 소통이 끊기고 단절되고 고립되던 도시였다.
한 때 개발지상주의에 의해 서울도 그렇게 설계됐다. 최대한 차를 많이 수용할 수 있는 도시가 발전을 담보한다고 믿었다. 그러다 작지만 상징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청계천이 복원됐다.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기자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갔다. 소통의 창구가 열린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차만 다니던 서울역 고가도로가 사람만 다니는 보행전용길 '서울로7017'로, 빌딩과 지역을 사람이 잇는 길로 변했다.
이 7017 프로젝트를 추진한 박원순 서울 시장은 "과거 서울은 차량 중심이었다. 서울시에 차가 너무 많고, 도로가 너무 크다. 지금은 보행 친화 도시로 걷기 편하게 만들고 있다"며 "서울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2000년 역사의 도시이다. 사람들이 열정적이고 다이내믹하다. 이런 것들을 잘 살려내도록 자락길이나 둘레길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 했다. 즉 사람 길 중심의 도시,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삶에 스며드는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얘기였다.
길의 주인이 차에서 사람으로 바뀐 천변길 청계천로(좌), 도보전용고가로 서울로7017(우)의 사례
다시 길의 주인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그러나 아직 걷는 것이 불편함이 된 시대이다. 걸어서 십 분이 채 안 되는 거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로 이동한다. 그게 익숙한 것이다.
나는 꿈꾼다. 걸음을 잃어가는 시대에 수백만 년 인간의 몸에 쌓인 생태적 메커니즘을 살려내고 싶다. 하도 걷지 않아 기형이 돼 가고 병에 찌들어가는 몸에 성덕대왕 신종이 울리듯 겹겹이 울리는 전율이 되고 맥박과 근육에 피가 돌고 힘이 살아나는 몸이 되게 하고 싶다.
도시에 살지만 사람이 진정한 주인임을 자각하고 실행하는 행복한 도시인이 되게 하고 싶다. 원래 길의 주인인 사람이 다시 길의 주인의 자리를 되찾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