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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를 걷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사람길 국토종주가 일반적인 걷기와 다른 것

by Hiker 나한영
사람길 국토종주길을 HANT(Human path Across the Nation Trail, 문화체육관공부는 HANT를 내년도 정부 행사인 '걷기여행주간' 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로 공식화했다. 한국 이름은 '한국종단트레일'로 정했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 이웃 일본도 있지만 그동안 한국에 없던 유일한 도보 국토종주 길이다. 한국인 누구나 도보 국토종주를 할 수 있도록 HANT를 보급하기 위해 사단법인 사람길걷기협회를 설립했다. 한국종단트레일 인증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내년 2월부터는 사단법인이 주관하는 사람길 국토종주단 1기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본 란은 그동안 없던 사람길 국토종주가 어떤 특징이 있으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간략히 요약한 글이다.


난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맞닥뜨릴 국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도보 국토종주에 나서기 전까진 잘 알지 못했다.

아니, 잘이 아니라 아예 몰랐다. 나는 전까지 전국의 산들과 둘레길을 걸었기 때문에 나름 우리 국토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국토종주라는 새로운 걷기를 계획하면서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경험이 없으면 예상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 없는 것들에 대해 섣불리 안다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가 우리 국토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유추나 상상에 의한 것이 많다. 심지어 글이나 영상은 물론 가장 흔한 사진으로도 접할 수 없는 국토종주라면 어떨까.


우리 땅을 수단이 아닌 직접 마주하는 길

2019년 1월, 나는 해남 땅끝에서 고성 철책선까지 도보로 걷는 국토종주를 시작했다. 그냥 목표 지점을 정해 걷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땅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직접 보기 위해 '사람길'을 개척해 걸었다.

그동안의 국토종주는 모두 국도를 따라 걸었기 때문에 우리 땅을 느끼기 위한 국토종주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국도를 따라 걸으면 찻길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국토종주' 하면 '우리 땅을 수단이나 배경으로 하는 극기훈련'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우리 땅은 수단이나 배경이 아니다.

우리 땅은 수백 년,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켜켜이 쌓인 삶을 만나는 현장이다. 돌 하나, 흙 한 줌 소홀할 수 없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담고 있음을 나는 비로소 국토종주를 하면서 느꼈다.

그것은 현재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사는 삶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라 켜켜한 숨결이 쌓인 이 땅이 배태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두 발로 우리 땅을 딛고 서서 한발 한발 밟으며 걷는 도보 국토종주는 그것을 실감하게 한다.


통일신라 때 덕진교를 떠올리는 영암천 징검다리


도보 국토종주길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 땅을 걷는 것은 걷는 매 순간이 목적지가 되게 한다. 종료 지점을 정하고 걷는 것처럼 별도의 목표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땅을 걸으며 만나는 모든 곳이 목적지이고, 우리 땅을 걷는 순수한 걷기 행위 자체가 걷기의 목표이다.

그동안 '걷기' 하면 당연한 것으로 알고 걷던 둘레길과도, 산길과도 다르다. 조성되고 정제된 둘레길 걷기, 또는 등산을 통해서는 국토의 다양한 쓰임새와 지역마다 사는 모습, 유구한 역사, 문화, 전통을 만날 수 없다. 바로 옆에 유적지가 있어도 갈 수가 없다.

국도를 이용해 걷던 종전의 국토종주길과도 다르다. 한 예로 국도는 강진 스폿 20곳 중 한 곳도 들를 수 없지만 사람길 국토종주는 18곳을 걸으며 자연히 만난다. 사람길 도보 국토종주는 산길도, 둘레길도 아닌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걷는 길이다. 산 넘고 강을 건너고 논밭길을 걷고 마을길, 하천길, 숲길, 산길, 둘레길을 걸으며 우리 땅의 모든 것을 만나는 길이다.

한 발자욱도 건너뛰지 않고 정직하게 우리 땅을 걸으면 우리 땅은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저 여기 있었어요" 하고 말을 건넨다. "내가 그동안 몰랐네". "모르면서 아는 줄 알았네", "그랬구나" 우리 땅에 동화돼 가는 과정이 도보 국토종주다. 진정한 한국사람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도보 국토종주다.


우리 땅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나는 한국사람들이 산티아고보다 우리나라 땅을 먼저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티아고 길처럼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이 구간마다 있는 것이 아니다. 순례자들이 처음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길을, 도적을 만날수도 있는 길을 무겁게 또는 경건한 마음으로 걸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언가 좋은 것을 보고 누리기 위해 우리 땅을 걷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을 누리고 싶다면 도보 국토종주가 아니라 여행을 가면 된다.

도보 국토종주는 날것의 우리 땅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마음으로 만나기 위한 것이다. 좋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것, 마음 아픈 것도 같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땅의 모습이니까 보아야 하고 감내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보고 싶지 않다고 외면한다면, 그 외면을 결국은 우리가 당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과 한 몸이기 때문이다. 땅이 고통받으면 우리도 고통받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토종주는 가장 성스러운 발걸음이다.

국토종주는 반추의 발걸음이다. 우리 땅의 모습은 현재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바로 직접 마주하는 것이다.

국토종주는 마음으로 호흡하며 걷는 걷기이다. 코로 숨 쉬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국토와 만나 국토의 자식이 되어 숨 쉬는, 국토와 진정으로 하나 되어 같이 호흡하는 발걸음이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길로 걸어가자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우리 땅을 상상하며 살았다. 심지어 아는 줄 착각하고 살았다. 그리고 '다 아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가서 걸었다.

이제는 진정한 우리 땅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사람길 국토종주는 전혀 새로운 길을 만나게 한다.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 준다.

우리 땅을 알기 위한 길로 걸어가자. 우리 땅이 반겨줄 것이다. "나 여기 있었어요" 하고 두 팔 벌려 달려올 것이다. 우리 땅이 그동안 못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우리 땅과 함께 부둥켜안고 뒹굴며 동고동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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