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를 못하게 만들었던 것들과 과감히 단절하자.

프롤로그 2 : 걷기와 친해지려면?

by Hiker 나한영

지금은 걷기 실종의 시대이다. 걷기운동의 필요는 알지만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재밌는 게 많아서, 힘들어서, 먹고살기 바빠서... 이유는 얼마든 많다.


무엇보다 현대 문명이 더 이상 걸을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차가 편리하게 이동시간을 줄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땅이 움직이고, 계단이 움직이고, 심지어 땀흘려 올라야 하는 등산도 도르래가 움직여 사람을 실어 나르면서 어떻게든 사람을 움직이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때 한 장교는 적군이 밀려오는 소식을 듣고도 당장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소파에 누워 있다가 들이닥친 적군에 변을 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편한 것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실제로 문명의 이기를 통해 인류가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은 고작 몇 십 년, 100년 미만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어떤 일이든 무엇을 하려고 해도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만 해결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는데 최소 2주일 이상을 꼬박 걸어야 했다. KTX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2주일에서 2시간으로 168배의 시간이 단축됐다. 이 같은 엄청난 시간의 단축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남은 시간을 여가를 즐기며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바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됐다.


무엇이든 더 빨리 하려고 하는 심리만 늘었다. 조급함이 "남보다 더" 많이 보고, 많이 알고, 많이 하라고 끊임없이 부추긴다. 시간이 단축됐음에도 바쁜것은 줄지 않는다. 세상은 더 빨리, 더 열심히 살라고 다그친다. 문명의 세상은 다 소화할 수 없는 너무 많은 것을 소화하기 위해 항상 쫓기듯 살게 만들고 있다.


세계 국민 중에 한국사람의 열심을 따라갈 국민은 없을 것이다. 가장 열심히 배우고, 가장 많은 시간 일을 하고, 못하는 스포츠가 없고, 여행 안 간 나라가 없고, 가십 하나조차 모르는 것이 없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빠야만 칭찬받을 것처럼 살고 있다.


이 같은 열심은 주어진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성실함의 척도일 수 있지만 슈퍼맨이 되길 요구하는 사회가 만든 부작용이기도 하다. 특히 모든 것에 열심인 것은 침탈과 식민, 전쟁을 겪으며 오랜 약소국가로 살았던 한국인에 내재한 열등감이나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고 싶고 돋보이고 싶고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욕심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같은 비교와 조급함이 행복할래야 행복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다. 한국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은 OECD 34개 국 중 33위(20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국가의 복지 수준 비교 연구' 보고서)로 꼴찌 수준이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관적 행복감이 아닌 소득, 건강, 사회적 관계 등 객관적 요소를 반영해 발표하는 유엔이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한국은 2020년 61위였다. 세계 10위권 대의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초라한 순위다. 겉으로 잘 살게 될수록 행복감은 더 하락해 2016년보다 6단계 하락한 순위다.


남보다 앞서겠다는 무한 경쟁 속에서 불행이 싹트고 있다. 경쟁이 필수적으로 초래하는 고독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불행을 낳고 있다.


행복의 요소가 무엇일까. 많은 것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성취나 성공에 있는것도 아니다. 삶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어떻게 사는지의 삶의 과정 속에 있다.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베풀며 용서하는 삶의 태도, 감사하며 비교하지 않는 마음, 자신만의 목표를 두고 만끽하고 몰입하는 자세, 이 관계, 마음, 목표라는 행복의 3 요소를 곱씹어야 할 때이다.


걷기는 빨리만 정답인 줄 알던 삶에 브레이크가 되어 준다. 브레이크를 걸고 보니 비로소 내가 그동안 못 보았던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시선이 머문 바로 그곳에 세상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와 같이 서 있을 것이다.